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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평점 :
《작별》 은 이어령 유고집이에요.
이 책은 이어령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워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인의 정서, 문화의 뿌리가 들어 있어요.
"우리가 늙어 죽음을 앞뒀을 때, 돌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돌아간다고. 우리는 먼저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귀빠진 날, 어머니와 함께 우리는 고통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 귀빠지는 아픔, 기억 없는 어린 시절 나의 출생, 거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기억 속에, 아주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돌아갔을 때 문득 들려옹는 노래 하나가 있습니다. 나 자신도 놀랍습니다. 고상한 노래가 아닙니다. 철학적인, 무슨 엄청난 노래가 아닙니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구전 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사람들은 이걸 언어의 폭력이라고 그럽니다. 왜 그럴까요?" (10p)
이어령 선생님은 노래에 등장하는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하여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어요. 어릴 때 흥얼거렸던 그 노래, 언젠가 왜 이런 가사를 붙였을까 좀 이상하다고 여긴 적은 있지만 그 이유를 찾아보진 않았어요. 세상에는 빨갛고, 맛있고, 길고, 빠르고, 높은 것들이 많은데, 이 노래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편견이 생긴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그 단어들이 시작되었을까요. 그 의미와 쓰임을 알면 인생을 알고 한국을 알 수 있게 될 거예요. 무엇보다도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는 생생한 삶의 체험이 날카로운 통찰로 인해 빛나고 있어요.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었고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난 대한민국과 함께 살아온 시대의 증인이자 시대를 밝혀주는 빛과 같은 존재였어요. 저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겪은 80여 년 동안의 경험, 그 지혜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어요.
"나의 생애는 슬프고 외로웠어요. 내가 왜 한국인으로 태어났나 가슴을 친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지요. 그게 다섯 가지 키워드 원숭이, 바나나, 사과, 그다음에 문명의 기차, 비행기로 이어져요. 그게 백두산으로 이어져요. 전부 남의 것인데 마지막 결론은 백두산이에요.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우리 거예요. 전부 남의 건데 우리 것 백두산으로 끝나지요. 그 노래가 끝나면 전혀 다른 노래가 뒤에 이어져요.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현제명 작곡의 다른 노래가 이어져요. 반도. 백두산. 삼천리. 이 가사를 읽어보면 빼앗겼던 땅, 그 땅에서 우리는 외국 물건만 쫓아다니면서 옛날 거 우리 거 다 잊어버리고 그것이 살길이라고 개화 100년을 열심히 뛰었어요. 남의 뒤통수만 보고 뛰었어요. 서양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뛰다가, 일본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뛰다가, 중국 사람들 뒤통수만 보고 뛰다가 이제 우리가 선두에 섰어요. 선두에 서면 뒤통수가 보일까요? 계속 뒤통수를 보고 따라갈 거예요? 백두산부터는 우리가 다섯 개의 키워드가 아닌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시대가 온 거예요. ...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뜨기만 했지 날지 못하는 대한민국 한국인이 여기까지 떴습니다. 어떻게 날아야 할까요. 날려면 이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엔진이 있어야 합니다. ... 엔진을 달고, 이렇게 앞으로도 100년을 살아야 돼요." (64-67p)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이 없는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우리들에게 버려둔 것, 잊고 있던 것들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어요. 인류의 역사는 말 탄 사람, 배 탄 사람이 지배해왔지만 다가오는 미래는 마음의 밭을 가는 사람들이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이 반도성의 회복이라고 알려주네요. 100년 동안 살아온 사람으로서 앞으로 100년 동안 살아갈 어린아이들이 부르게 될 키워드 하나를 꼽자면, 그건 '버려둬'라고 해요.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소중한 다섯 가지 키워드 속에서 잃어버렸던 그것이 그냥 버려지지 않고 다시 새롭게 쓰였듯이, 미래를 끌어갈 새로운 언어가 될 거라고 말이죠. 그것을 함께 경험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헤어지는 인사말인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139p)라고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도 이별이 끝이 아님을 알려주네요. 비록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늘 함께일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