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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 십자군 유적지 여행 ㅣ 여행자의 시선 1
임영호 지음 / 컬처룩 / 2022년 6월
평점 :
유럽여행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서 여행 책만 봐도 설레네요.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는 십자군 유적지 여행기예요.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꿈꾸는 유럽이 아닌 구체적인 목표 내지 테마 있는 여행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리 멋진 곳을 여행해도 사진의 배경으로만 남는다면 진짜 여행의 의미가 반감될 것 같아요. 그래서 똑같은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사람마다 경험하는 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자는 오랫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종교와 전쟁이야말로 유럽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했고, 중세 유럽의 흔적에 매료되어 십자군 운동과 관련된 여러 지역을 여행하게 되었대요. 이 책은 저자가 여행한 유럽에서 십자군과 관련된 역사적 유적지를 중심으로 엮은 역사문화 기행서라고 하네요.
기독교 성지의 나라 요르단에는 제가 꼭 가보고 싶은 고대 유적 페트라가 있어요. 아마 제 또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과 함께 페트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영화 속 가상의 공간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요르단 남쪽 사막에 실재하는 고대 도시라고 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나요.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고, 아라비아반도 유목민 나바테아인들이 세운 왕국의 수도였다고 해요. 페트라의 대표 명소인 알카즈네로 가려면 좁은 절벽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에 시크라 불리는 계곡이 시작된다고 하네요. 영화에서도 그 여정이 매우 신비롭게 표현되어서 감탄했는데, 책 속 사진을 보니 입구에 관광객들이 없었다면 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나 건물 내부는 휑하니 비어 있는 공간이라 딱히 구경할 건 없고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고 해요. 영화에서도 보물을 숨겨둔 장소로 묘사되었는데, 알카즈네라는 이름이 파라오의 보물 창고라는 뜻이라서 일부 유목민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건물에 총격을 가해 파손되었다니 씁쓸하네요. 역사학자들은 고대 나바테아의 왕 아레타스 4세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그만큼 페트라는 알려진 역사보다 묻혀 버린 역사가 더 많아서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나봐요. 절벽을 깎아 만든 건축물도 원래 고대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했는데, 훗날 로마가 점령하면서 로마식으로 개축되어 로마의 시설이 되었다니 잊혀진 역사가 안타깝네요.
요르단강은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지역을 방문해 성지로 선언했다고 해요. 요르단강과 예수의 세례 터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의 군사 시설 보호 구역 안에 있는데 20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기후와 지형이 바뀌어 요르단강은 강이라고 부르기엔 작고 혼탁한 강물이 흐르고, 예수가 세례를 받은 장소는 메마른 웅덩이로 변했대요. 설명과 표지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초라한 곳이 성서에 나오는 그 성지라니 뭔가 묘하네요. 그러니 유럽의 역사와 성서를 모른다면 그곳을 여행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십자군의 유적지로 그리스의 로도스섬, 터키 땅의 보드룸 성채, 그리고 시칠리아섬 부근의 몰타까지 성 요한 구호 기사단의 대표적인 자취를 따라가며 기사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십자군 유적 답사는 중세의 역사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 종교를 아우르는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인 것 같아요. 예루살렘은 십자군 원정을 이해하는 데에 독특한 의미를 지닌 곳이에요. 교회의 주창으로 성지 회복이라는 종교적 명분을 걸었기에 예루살렘 없이는 성전 자체가 성립할 수없는데, 군사적 측면에서 예루살렘은 험한 비탈 위에 성벽이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어 공략하기 어려웠던 거죠. 현재 예루살렘 성벽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된 것을 오스만제국의 술탄 술레이만 1세가 복원했다고 해요. 그래서 저자는 성지는 여러 시대의 기독교 유적이 건축, 파괴, 재건을 거듭하고 이교도 유적과 뒤섞여 이질적인 역사가 층층이 퇴적된 곳이며,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허망한 풍경에 불과하다고 설명해주네요. 역사적 사건도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요. 종교로 인한 전쟁, 십자군 원정의 흔적 속에서 역설과 모순을 발견했어요. 십자군에 얽힌 이야기, 그 역사 기행을 통해 오늘의 유럽과 중동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