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이와 차이 -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얀 그루에 지음, 손화수 옮김, 김원영 추천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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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이와 차이》 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언어학 교수 얀 그루에의 자전적 에세이예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차별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

만약 우리들이 옳고 그름의 기준 그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사라질 거예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조차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으니, 그건 법의 문제가 아니라 법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고통 혹은 차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와는 무관하다고 단정짓는 순간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악의, 악의 마음이 싹튼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어떤 불행도 나만 예외일 순 없다는 걸 기억한다면 타인의 불행 앞에 무감각하게 굴진 못할 거예요.


"정상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다.

삶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삶은 항상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게 선천성 근육 질환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 세상에는 살아온 삶과 살지 못한 삶이 있다. 살아온 삶은 물이 공기 방울을 보듬어 안듯 살지 못한 삶을 포용한다.

... 나는 항상 나였다. 단지 내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조금의 불안감이 존재했을 뿐."

(79p)


이 책의 원제는 "나는 당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해요. 저자는 한동안 '한 인간으로 거듭나기까지'를 책 제목으로 생각해 왔는데,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인 마크 오브라이언의 책이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되어 포기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책 제목을 사용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마크 오브라이언과 자신의 차이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오브라이언은 소아마비에 걸린 마지막 어린이 중 한 명으로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출생부터 임종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홀로 살아야 했는데, 저자는 열세 살까지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살면서 여름 캠프에 참가하거나 요양기관에서 보낸 시간 말고는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항상 한 인간으로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주변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험했던 적대감, 불쾌감, 반감, 외로움의 감정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해요. 부모님은 항상 "너는 우리에게 언제나 '얀'일 뿐이란다." (41p) 라고 말했지만 부모님의 진심을 알면서도 온전히 믿지는 못하다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비로소 아이는 아이로서의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대요. 저자는 스스로를 한 인간으로서 오롯이 인정하며 살아 왔고, 누가 뭐라든 흔들릴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에 말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 거예요. 그래서 기억하는 모든 것을 기록했나봐요. 걷다가 넘어지는 몸을 가졌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몸이 얀 그루에는 아니라는 것. 그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정체성 혼란을 겪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한계를 견뎌야 했고, 때때로 편견과 차별을 당했어요. 특히 해외 여행을 하는 경우가 심한데, 노르웨이에서는 거의 들어 보지 못했던 말을 러시아에서 거의 매일 같이 들었다고 해요.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죠?

여긴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얼른 나가세요."

(123p)

무자비한 발언을 수없이 들어야 했던 러시아에서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저자도 참기 어려웠다고 하네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는 고백이 아프고 슬프네요. 그때의 경험 이후 달라졌다고 해요. 나를 원하는 곳, 나를 받아들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세상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대요. 현재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았어요. 삶의 방식,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요. 삐딱한 시선,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그 생각이 틀린 거예요.

얼마 전 보게 된 드라마의 장면이 겹쳐 떠오르네요. 드라마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죠.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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