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기특한 불행 - 카피라이터 오지윤 산문집
오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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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기특한 불행》 은 카피라이터 오지윤님의 산문집이에요.

역시 카피라이터는 다르구나 싶었어요. 제목부터 확 끌리는 문구예요. 읽기 전에 뭔가 알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어릴 적에 문득 든 생각인데, 작은 상처가 생기면 늘 다행이라고 안심했어요. 더 많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는데 요만큼만 아픈 거라고 위안을 삼은 거죠.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지금도 자잘한 상처들은 액땜으로 받아들여서 별일 없는 하루를 감사하며 보내고 있어요.

저자가 들려주는 일상 이야기도 딱 그 느낌이라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네요. 그래, 이거지...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순간들이 마음을 답답하게 했는데, 솔직담백한 저자의 글을 읽으니 시원하게 대리만족이 되네요. "튀지마.", "티내지 마.", "나대지마."... 대강 이런 말들을 쭉 듣고 자라다 보니, 이제 누가 잔소리하는 것도 아닌데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애매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책 표지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풍덩, 저 파란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거든요. 바다, 드넓은 바다 속으로... 억눌렸던 욕구가 많았었나. 아무래도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가에서 노는 게 신나고 재미있으니까요. 암튼 너무나 당연하게 그림인 줄 알았다가 사진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스페인 사진작가 요시고의 작품이래요. 이름이 요시고, 상상으론 한국 작가 아니면 일본? 근데 스페인 사람이고, 본명은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 에체베리아, 수염 덥수룩한 남자였네요. 여자라는 추측도 땡! 하나도 맞춘 게 없어요. 작년 이맘때 '요시고 사진전 - 따뜻한 휴일의 기록'이 열렸는데 꽤나 힙한 전시였다는 걸 뒤늦게 확인했네요. 겨우 사진 한 장을 봤을 뿐인데, 첫눈에 반해 자꾸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네요.

신기한 건 표지 사진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물론 그 사진에 대한 감상은 아니지만, 저자의 글 속에서 발견해 좋았어요.

"차가운 물이 내 온몸을 부드럽게 안아 주는 느낌은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 혹은 다른 '생태계'로부터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을 받는 기분이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언제나 귀한 일이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겸허해진다. 평화로운 물속에서 하늘색 수영장 타일을 따라 두둥실 나아가다 보면 마음도 어느새 균형감을 되찾는다. 주변 사람들과 나 사이. 업무와 집안일 사이. 부지런함과 게으름 사이. 한쪽에 치우쳐 부대끼던 마음의 눈금을 0으로 만드는 건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102p)

수영장 말고 바다에 풍덩, 들어가본 지가 정말 오래된 것 같아요. 별거 아닌 일이라고 여겼는데, 왠지 특별한 일이 될 것 같아요. 온몸을 던져보는 경험, 어쩌면 지금 제 삶에서 가장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 죄책감이 들진 않았다. L 에게도 솔직하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불행을 먹으러 왔다"고. L은 기쁜 마음으로 내 입에 불행을 물려줬다. "지윤아. 나도 거지 같아." 참 이상한 일이다. 서로 불행하다며 아웅다웅하는데 왜 우리는 웃음이 나는 걸까. 나만 힘든 게 아니고 그도 힘들다는 사실이 왜 우리를 웃게 만드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도 내 불행을 L에게 한껏 떠먹여 줬으니 자책하진 않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나눠 먹으며 위로받고 서로를 더 껴안아 주게 되니 오히려 좋다. 이 천박한 안전장치는 의외로 나를 더 좋은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나 빼고 다 잘되고 나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나의 생각 회로는 자동으로 '아냐, 저들도 고통받고 있어'라는 안전장치를 꺼낸다. 이 안전장치를 꺼내는 순간 옷장에 가둬 뒀던 인류애가 문을 따고 기어 나온다. 나의 안전 장치가 바로 인류애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셈이다.

...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연대하며 행진하거나, 같은 '빡침'을 공유하는 팀원끼리 모여서 팀장을 욕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연대감은 서로의 불행을 확인하는 데서 오고 그 불행 대잔치가 행복의 시작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나는 고해성사라도 한 것처럼 후련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좀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우리의 불행에 대한 글을 쓰며 자존감이 높아져 버렸다. 창피하지 않다.

(23-24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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