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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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는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 심사위원인 존 캐리의 책이에요.

이 책은 영미 문학에서 시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요. 고대의 서사시부터 현대시까지 시대별로 대표적인 시인과 시를 인용함으로써 시의 변천사와 함께 시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고 있어요. '시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시를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지어진 「길가메시 서사시」 이며 점토판에 새겨져 보존되었어요. 누가 왜 이 시를 지었는지를 알 수 없으나, 시의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에요. 사랑은 문명화의 힘이며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이고,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고대 그리스에는 호메로스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가 있고, 로마제국에는 시인 3인방이 등장해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호라티우스의 「송가」,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 「변신 이야기」 를 소개하고 있어요. 이들의 서사시는 생동감과 정서적 깊이가 유럽의 상상력을 끌어내는 원천이라고 볼 수 있어요. 특히 호라티우스 자신은 시인으로서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될 미래를 내다봤다는 점에서 놀라워요. '나는 황동보다 영구한 기념비를 세웠네.' (「송가」 제3권 30장) 라는 시구뿐 아니라 오늘날 가장 유명한 문장인 '오늘을 붙잡으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송가」 제1권 11장)을 썼으니 말이에요.

영국은 앵글로색슨 문학의 고전이자 위대한 보물로 일컬어지는 「베오울프」 (700년경) 에서 스칸디나비아를 배경으로 현재 스웨덴 남부에 살았던 예아트족의 전설적 영웅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어요. 영국인이 앵글로색슨에게서 물려받은 민족적 기질이 있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베오울프」의 절제된 화법이 고난을 앞둔 브리턴족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의연하고 냉정한 태도를 연상시키는 요소라고 하네요.

중세 유럽으로 넘어가면 이탈리아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1320년)이 나와 있어요. 단테는 저주받은 사람들이 받게 되는 지옥의 형벌을 창안했는데, 그 묘사가 소름 끼치게 무섭다고 해요. 그러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을 통틀어 현대 독자에게 가장 호소력이 떨어지는 시인으로 꼽을 수 있어요. 「신곡」은 중세 후반에 위대한 걸작으로 칭송받다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그 명성이 퇴색되었는데, 20세기 초에는 T.S. 엘리엇과 에즈라 파운드가 문화적 현재성을 부여해 부활했다고 봐야겠네요.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로 가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편들이 등장해요. 가장 유명한 소네트 열다섯 편 중 네편은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어요. 18세기는 신고전주의를 선도한 두 시인, 존 드라이든과 알렉산더 포프가 있고,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시인인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있어요.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여성의 정신적, 영적 동등성을 주장한 다른 여성작가로는 윈첼시 백작 부인 앤 핀치와 엘리자베스 톨레트가 있어요. 신고전주의 문학사에서 18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여성 작가의 작품이 많이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기예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 가면 영국의 키츠, 셸리, 블레이크, 바이런, 번즈가 있고 독일에는 괴테, 하이네, 릴케, 러시아에는 푸시킨, 레르몬토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들을 만날 수 있어요. 19세기 후반에는 영국 여성 시인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에밀리 브론테, 크리스티나 로제티, 미국에는 두 명의 천재 시인인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프랑스에는 보들레르, 말라르메, 베를렌, 랭보가 있어요.

20세기 초반에는 영국의 T.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버지니아 울프, 독일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일랜드의 W.B. 예이츠, 스페인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통해 모더니즘을 느낄 수 있어요. 중국과 일본의 시는 아서 웨일리가 1918년 출간한 시집이 거의 영어권 세계에는 처음이라는데, 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최근 현대 시인으로는 북아일랜드의 셰이머스 히니, 카리브 해 세인트루시아 섬의 데렉 월코트, 미국의 마야 안젤루와 메리 올리버, 오스트레일리아의 레스 머레이를 소개하고 있어요. 특히 메리 올리버 ( Mary Oliver , 1935~2019)는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자 우리에겐 시 '기러기'로 유명하지요. 2009년 미국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이 9.11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낭독한 시였고, 김연수 소설가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시를 인용하여 널리 알려졌어요. 여기에 소개된 메리 올리버의 시는 다음과 같아요.


역사, 그 뼈저린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난 삶을 지울 수는 없고, 용기를 가지고 마주한다면,

다시 살아갈 필요가 없다.

History, despite its wrenching pain,

Cannot be unlived, and if faced with courage,

Need not be lived again.

(492p)


메리 올리버는 오하이오 주 메이플하이즈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지만 자연에서 위안을 찾았고, 나뭇가지와 잡풀로 직접 지은 오두막집으로 피신해 시를 썼다고 해요. 그녀는 퀴어 커뮤니티 프로빈스타운에서 동성 파트너인 사진작가 몰리 멀론 쿡과 함께 전원 생활을 하며 다수의 시를 지은 것이라고 하네요. 시 '기러기'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저 '나'로서 충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겠지요.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들,/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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