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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ㅣ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평점 :
《녹색 갈증》 은 최미래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자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열세 번째 책이에요. 한국 단편소설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것 같아요. 분량적으로 짧은데 이야기의 양은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아요. 딱딱했던 막대기엿이 쭈우욱 늘어나는 느낌이랄까.
소설 속 화자인 '나'는 툭툭 던지듯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왠지 유난스러울 것 같은 엄마와 대쪽 같은 성격의 언니, 그리고 내 사랑 윤조.
처음엔 윤조가 헤어진 연인 관계인 줄 알았어요. 분명 사랑이라고 표현했으니까, 무엇보다도 '너는 여전히 손톱이 길구나. 나는 너의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5p)라는 문장으로 둘 사이를 짐작했던 거죠. 그러나 상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어쩌면 상상하지도 못한 사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나와 윤조의 관계는 소설가와 소설 속 주인공 혹은 현실과 꿈...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럴 것 같은 느낌인 거지, 정확하게 규정하긴 어려워요. 같은 반이었고, 교실에서 왕따인 부반장이 친구에게 맞고 있을 때 다들 우왕좌왕 소란스러운데 윤조만 뒷문에 등을 기댄 채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어요. 나는 그 옆으로 갔고, 윤조는 말했어요. "잘 봐, 이 틀어진 공기를. 제대로 보는 거야." (18p)
윤조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평소와 달리 묘하게 어긋난 교실. 그날 이후로 쭉 윤조와 함께 다녔어요. 윤조는 학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아이들 중 하나였는데, 물론 그 아이들이 함께 있는 건 아니고요, 조용하고 텅빈 학교 운동장에 혼자 있으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 갈 수 있기 때문이래요.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학교가 끝나고 갈 곳이 없으니까 늦게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마저도 윤조는 읽어냈어요. 그게 아니라고, 직접 손바닥으로 내 두 눈을 감겨주면서,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줬어요. 어떻게 그 감각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윤조의 목소리는 길잡이가 되었어요.
세월이 흘렀고 지금 내 곁에 윤조는 없지만 소설 속에서 윤조는 살아 있어요. 여기서 '나'라는 인물에게 윤조는 어떠한 존재였는가, 윤조와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생각하게 돼요. 현실에서 느끼는 갈증은 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음에서 오는 갈증은... 아마 다들 설명할 수 없는 저마다의 갈증이 있을 거예요. 《녹색 갈증》 은 자신도 미처 몰랐던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윤조 할머니가 몰래 꺼내보던 그 보석함,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한 순간, 심한 갈증을 느낄지도 몰라요.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평소 안 마시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네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방법이 아니면 지루한 삶을 견디기 어렵단다." (26p)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자꾸 나를 허기지게 만드는지." (34p)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억지로 녹이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네 안에 살아 있게 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들을 내버려두면 알아서 살아가게 되는 법이라고
네가 그랬잖아." (6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