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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와인과 삶에 자연을 담는 프랑스인 남편과 소설가 신이현의 장밋빛 인생, 그 유쾌한 이야기
신이현.레돔 씨 지음 / 더숲 / 2022년 5월
평점 :
스치듯 만난 인연도 재회는 반가운 법.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의 저자가 이 책을 썼다니, 좀 놀라우면서도 반가웠어요.
대부분 소설가의 삶이란 독자에겐 그저 소설의 연장선이랄까, 제멋대로 상상하는 영역이라서 현실감이 전혀 없거든요.
이렇게 책을 통해 소설가 신이현님의 삶을 만나게 되니 소설보다 더 재미있네요.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의 진짜 주인공은 도미니크 레몽 에으케, 꼬부랑 머리 레돔 씨예요.
저자의 남편이자 프랑스 알자스 태생의 촌남자라고 하네요. 외갓집이 포도 농사를 짓고, 소를 몇 마리 키우면서 치즈도 만들었대요.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다 불현듯 농부가 되고 싶어서 농업대학에 들어가 포도 재배와 양조학을 전공하고 알자스 와이너리에서 일했대요. 반면 아내 입장에서는 남프랑스 낯선 시골에서 조그마한 동양 여자로 늙어가긴 싫었대요. 남편은 어디에서든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좋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대요.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간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대요.
그러니까 이 책은 한국에 정착하게 된 프랑스인 농부의 인생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언제부턴가 아내도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밭으로 들어서는 순간이 좋아졌대요. 다들 만류하는 고생길, 그 농사일에 아내도 재미가 들기 시작했다니 정말이지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누구말마따나 삶 자체가 고행인데 기왕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고생하는 게 덜 억울하지 않을까 싶어요. 죽어도 농부가 되고 싶다는 남편의 뜻을 존중해준 아내도 멋지고, 함께 농사 일을 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부부의 모습도 아름답네요. 물론 첫해 사과 농사가 망했고, 두 해째도 망했지만 꿋꿋하게 자연을 살리는 농사 철학을 고수하는 레돔 씨는 최고로 멋진 농부인 것 같아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돈이나 명예, 세속적인 것들을 기준으로 말할 테지만 결국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누가 뭐래도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신이현 작가님과 에돔 씨를 보니 마음이 맑아지네요. 아참,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이 뭐냐고요? 벌써 알아차리지 않았나요.
"아마도 여긴 옛날에 떡갈나무숲이었을 것 같아. 이것 봐. 떡갈나무를 벤 둥치야. 백 년은 된 것 같지 않아?
베지 않고 그냥 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는 이 언덕에 살다가 사라진 모든 나무를 아쉬워한다. 특히 늙은 떡갈나무는 미생물을 폭발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어 주변의 병든 식물들을 치유해준다고 한다. 식물들의 뿌리는 본능적으로 떡갈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해 가는데, 거기에 가면 온갖 좋은 박테리아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온갖 전통요법을 알고 조제해 주는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정말 신기해서 그를 본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냥 월급쟁이 엔지니어였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아는지 모르겠다. 떡갈나무의 계시라도 받은 걸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 나무들도 여러 종이 함께 어울려 살 때가 제일 좋아. 모자란 것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거든. 포도밭에 복분자랑 복숭아나무, 보리수나무, 회화나무 같은 여러 나무들을 심는 것도 서로서로 모자란 것을 주고받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야. 인간 사회의 이상적인 민주주의 형태 같다고 할까. 특히 이 복분자는 500미터까지 떨어진 떡갈나무 뿌리에 붙은 미생물들을 밭으로 데리고 와. 먼 숲의 소식을 알려 주는 정령과도 같지. 포도밭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무야."
밭에서 듣는 레돔의 이런 이야기는 나를 조금 진정시켜 주는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해준다. 나의 떡갈나무 아저씨다. '이렇게 농사짓고 술 만들어서 먹고 살 수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불만을 사라지게 한다. 며칠 뒤에 다시 그것들이 찾아온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요즘 어떤 수도사의 농업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어. 그 수도사 농법의 시작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거야. 이런 긍정적인 출발이 땅과 나무들을 건강하게 만든대. 그러니 나무가 얼어 죽을 거라는 둥 잡초가 많아 문제라는 둥 비관적인 말은 안 하면 좋겠어."
나는 반성하고 그런 바보 같은 말 대신 포도나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인생은 아름다워...... 정말 그렇네." (219-220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