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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문장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명숙 옮김 / 북바이북 / 2022년 5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여성과 글쓰기》는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문장들을 엮은 책이에요.
누군가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할 거예요.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버지니아 울프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책을 읽었을 뿐이에요. 마치 몇 마디 인사를 나눈 정도의 사이랄까요.
아는 척 할 수는 있어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순 없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모른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새롭게 배웠네요.
버지니아 울프는 다소 어렵고 난해한 작가로 여겨지는데, 일부 독자들은 낯선 서술 방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으려다가 약간의 피로감과 일종의 정신적 멀미를 경험하기도 한대요. 그러니 이미 울프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아직 '모른다'고 느낀다면 이 책이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옮긴이의 말처럼 "문학사에서 '여성과 글쓰기'를 논함에 있어서 그녀의 『자기만의 방』 과 문장들만큼 획기적인 발견이 또 있을까?" (19p)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여성이 글을 쓴다는 건 글쓰기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삶 자체, 생존과 존재의 문제라는 걸 알려줬다는 점에서 놀라운 작품인데, 정작 본인은 페미니스트적인 책은 아니라고 말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과정이야말로 버지니아 울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첫 걸음인 것 같아요. 젊은 여성이 사회적인 제약과 비판을 무릅쓰고 글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여성들의 지적활동을 하찮게 여기는 풍토에서 생계는 전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불가능에 가깝죠. 영국에서는 1870년, 기혼여성재산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여성이 결혼 후에 벌어들인 급료와 재산을 모두 남편이 차지했다고 하니, 울프가 고모의 유산을 물려받은 건 대단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요. 유산을 상속받기 전에는 온갖 잡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느라 힘들었던 울프는 솔직히 선거권과 돈 중에서 돈이 더 중요하다고 고백했어요. 저 역시 그랬을 것 같아요. 또한 여성작가들이 시적 재능을 지녔음에도 소설을 선택한 건 허용된 영역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죽은 시인'이라는 표현으로 무명의 여성 시인들을 애도하고 있어요. 가난과 어둠을 극복해야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는 글들이기에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글 쓰는 여성들 중에서 지금 유명한 작가들은 아이가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부분인 것 같아요. 울프는 '가정의 천사 죽이기'는 여성작가라는 직업의 한 부분이었다고 말하네요. 자기 방에서 잉크병 앞에 앉아 할 수 있는 글쓰기는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현재 여성의 글쓰기가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사회적인 편견이나 억압까지 사라진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화해 왔다는 점이에요. 척박한 땅을 일궈냈던 수많은 여성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을 통해 강렬한 감정이 솟구치는 경험을 했어요.
여성의 핏속에는 익명성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성은 여전히 자신을 숨기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111p)
16세기에 시적 재능을 타고난 여성은 곧 불행한 여성, 자신과 싸워야만 하는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112p)
나는 여전히 텅 빈 서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여성에게는 이 모든 어려움이 무한히 크고 훨씬 더 많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선 19세기 초까지도 여성은 조용한 방이나 방음 장치가 된 방은커녕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115p)
천재적인 남성들도 견디기 어려워했던 세상의 무관심은
여성의 경우에는 무관심을 넘어선 적대감이었습니다.
세상은 앞서 언급한 남자들에게는
"글을 쓰고 싶으면 쓰시오.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글을 쓰겠다고? 그따위 것을 무엇에 쓰려고?" (11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