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 이어령 산문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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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철이 들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엄마를 생각하다가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이 있어요.

강인하게만 여겼던 엄마가 한없이 약하게 느껴졌고, 스스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여전히 엄마는 내 삶에 있어서 커다란 존재이지만 이제는 내가 안아주고 싶어요. 엄마를 꼬옥 안으니 내가 컸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 책은 '어머니'라는 단어와 저자가 이어령 선생님이어서 읽게 되었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강력한 두 가지였어요.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이어령 선생님의 산문집이에요.

2010년 처음 출간된 책인데 이번에 새롭게 리커버 개정판으로 나왔네요. 올해 2월,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그 빈자리를 채우고자 선생님의 책들을 찾아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어령 선생님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 이전에는 무신론자이자 냉철한 지성인으로서 사적인 신변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는데, 그 책에서 공개한 가족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문의를 많이 받았다보니 후속편을 대신하여 어린 시절의 자신과 어머니에 관한 글들을 담은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하네요.

열한 살 소년에게 노란 귤은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에요.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가신 어머니는 병문안 온 손님들이 가져온 귀한 귤을 막내 아들에게 주려고 고이 간직하셨대요. 그 귤은 하얀 상자 속 유골과 함께 집으로 왔고, 끝내 먹을 수 없었던 그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혔다고 해요. 서울 가시기 전 날 밤에 어머니는 막내 아들에게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하셨는데, 숙제를 해야 한다며 핑계를 부리고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드리지 않았대요.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인 줄 몰랐던 거죠. 겨우 열한 살 아이가 무얼 알았겠어요. 하지만 평생 속앓이를 했겠지요.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걸.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에요. 다정다감했던 어머니를 한순간에 잃은 아이의 마음, 그 슬픔과 아픔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리움이 사무쳐 더욱 커졌을 것 같아요. 그리움이 쌓인다고 표현하지만 그리움은 커질수록 마음 깊숙히 후벼대며 구멍을 내는 것 같아요.

저자가 왜 그토록 자신의 이야기를 꺼려 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세상에게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 아마도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선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 나'와의 이별 과정인 것 같아요. 머무르지 않고 길을 나서야 성장할 수 있어요. 이어령 선생님은 영상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어요.

"여러분들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 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잘 있어. 틀림없이 너희들은 잘 있을 거야'라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 잘 있으세요, 여러분들 잘 있어요."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이 나를 따라다닌다.

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수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했다.

...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19-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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