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 열여덟 번째 책이네요.
《기이현상청 사건일지》는 이산화 작가님의 연작소설이에요.
주인공은 역사를 기록하는 존재이며, 그가 기록한 글들은 공무일지예요. 기이현상청은 온갖 불온하고 위험하고 수상쩍은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들을 관리하는 곳이에요. 대한민국에 이러한 조직이 존재한다는 상상부터가 기발한 것 같아요. 해당 부서의 명칭이 상당히 특이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다섯 편의 소설은 각각 기이현상청 직원들이 담당한 업무의 일환이기에 하나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어요.
흥미로운 판타지 세계인 듯 보이지만 절묘하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버무려놓았어요. 공무원들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며 나름의 사명감을 지녔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간혹 그 믿음을 깨뜨리는 일들이 벌어져서 국민들을 실망시킬 때가 있지만 희망을 놓고 싶진 않아요.
기이현상청 직원들은 어떨까요. 어느 직장이나 상사와의 관계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들이 다루는 대상은 기묘하고 신기하지만 직원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리고, 미소를 짓고, 얼어붙어 가는 혀를 놀려서 뻔뻔하게 나가야겠지." (90p)
가장 놀라웠던 건 세종대왕의 등장인 것 같아요. 우리가 역사 시간이 침이 마를 정도로 칭송하는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을 길 잃은 정령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세종의 망령은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저기, 전하? 아무래도 설명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은데요. 폐하가 돌아가신 지 거의 600년이 지났고, 그동안 세상이 뭐냐, 많이 바뀌어서요!" (242p) 자신이 다시 왕으로서 조선 땅을 통치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날뛰는 망령은 더 이상 과거 성군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자, 이제 이 망령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이현상청 직원들은 철저히 정해진 절차 방식을 따랐어요. 망령의 맥을 끊기 위해 머리를 후려쳤고,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산산이 부숴졌어요. 엇,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제 착각이더라고요. 망령은 그저 망령일 뿐인 거죠. 세종의 머리를 후려갈긴 나루에게 세경은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튼 그, 솔직히 속은 엄청 시원했어요. 복수도 복수였지만...... 나중에 누가 이걸로 뭐라고 하면 똑같이 머리를 후려쳐 줘야겠다, 세종도 후려쳤는데 앞으로 뭔들 못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웃기죠. 세종대왕님 머리를 날려 버리면서 할 생각은 아닌데." (281p) 아하, 그거였구나... 어쩐지 뭔가 후련한 느낌이 들더라니, 그 이유가 납득이 됐네요.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가로막는 건 사회 엘리트 계층의 부정부패라고 볼 수 있어요.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처벌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부패할 수밖에 없어요. 나루의 화끈한 한 방,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깨닫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