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든 앨리 - 골목이 품고 있는 이야기
전성호 외 지음 / 바림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골목길 하면 친구들과 뛰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요.

매일 골목에서 놀다가 저녁 짓는 냄새와 함께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더랬죠. 지금 골목은, 그저 추억하는 장소가 된 것 같아요. 점점 개발이 되면서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많아지고, 좁은 골목길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어요. 골목길은 원래 사람이 다니기 위한 길인데, 이제는 그 길을 차에게 완전히 뺏긴 기분이에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어요. 빼앗긴 골목길...

《포비든 앨리》는 부산 MBC 다섯 명의 PD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국내의 여러 골목길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내어 2021년 '제48회 한국방송대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2000년대 초반 <포토에세이 골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진작가'와 '골목'의 조합이 얼마나 환상적인가를 확인했기에 가능했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골목 이야기와 더불어 '보는 것이 예민한' 사진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어요. 사진은 영상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사진 속에서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특별한 역사의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40p) 부산에서 만난 포토그래퍼 아나스타샤 한은 남편을 따라 20년 전 한국에 오게 되었고 부산에서 쭉 거주하며 활동했기에 부산의 숨겨진 골목들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했다고 해요.

"당신에게 골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73p)라는 질문에, 부산의 유명한 호천마을 골목을 가꿔낸 강재성 씨는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했어요. 좁아터진 골목은 사는 데 너무도 불편하지만, 막상 없앤다고 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는 의미라고요. 마을과 골목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대다수 주민은 마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에 무관심하지만 그는 마을의 또 다른 변신을 꿈꾼다고 하네요. 정말 멋진 꿈인 것 같아요.

대전의 대동마을, 수많은 골목 중 방송에서 사진작가 제임스 애덤스가 "무지개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24p)라고 표현한 골목이 인상적이에요. 사진만 봐도 왜 무지개라고 표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데, 매일 그곳을 지나는 주민들은 행복할 것 같아요.

경주 촬영을 위해 섭외한 사진작가 노이 알론소의 사진은 독특한 분위기가 압권인데, 그 방법을 물으니 적외선 촬영으로 가능하다고 알려줬대요. 우리가 찍는 사진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이용하는데 적외선 촬영은 가시광선을 차단하고 적외선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이 경주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가 찍은 사진들은 색달라요. 이미 보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진 거예요. 노이 알론소가 뒷길이나 골목길 탐험을 좋아하는 건 사람들이 덜 가는 길이기 때문이래요. 인적 드문 골목이야말로 그에겐 보물 같은 장소인 거죠.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 주변 골목길 이름은 '추사로'라고 해요. 몇 가구 살지 않는 데다 관광객들도 많지 않아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길인데 골목 한편에 우물터가 있대요. 그 우물터 옆 벽화에 김구 선생의 애송시가 쓰여 있었대요.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는 '포비든 앨리'의 기획의도이자 지향점이다. (244p)

광주 골목의 매력은 양림동에서 찾을 수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 현장인 금남로에서 두 번 꺾어 들면 나오는 골목에는 40년이 흘러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네요. 광주의 골목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함께 흘러가는 것 같아요.

포비든 앨리가 3년 간의 작업물이라니 그 노력과 열정이 놀랍네요.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쇠퇴해가는 골목, 어쩌면 수년 안에 사라질 골목을 영상과 사진으로 소중하게 담아냈기에 더욱 애틋함이 남는 것 같아요. 처음엔 뺏긴 느낌이었는데 알고보니 함부로 방치하고 외면한 건 우리였네요. 이제서야 골목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한 듯, 전국에 숨겨진 작은 골목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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