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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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는 초보 농사꾼이자 초보 책방지기고 초보 마을소설가로서의 일상을 기록한 책이에요.

첫 장에 적혀 있는 '그 계절에 맞는 마음을 살피는 일'이라는 문장이 좋았어요. 날씨처럼 시도때도 없이 변하는 기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은 세심하게 돌보고 가꿀 수록 아름다워지니까요. 자신의 마음 밭을 가꾸는 농부가 되어 보는 거예요.

저자는 섬진강 들녁에서 보낸 한 해의 이야기를 1월부터 12월까지 일기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어요.

각 달을 표현한 문장이 인디언의 언어처럼 멋진 것 같아요.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에 대해 이름을 붙여준 듯.

1월은 가만히 견디며 낮게 숨 쉬는 달, 2월은 겉을 뒤집고 속을 뒤집는 달, 3월은 마음껏 나물을 먹는 달, 4월은 흙과 사귀고 싹을 틔우는 달, 5월은 못줄 따라 내일을 심는 달, 6월은 뽑을수록 허리가 아픈 달, 7월은 큰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달, 8월은 멱감고 그림자를 키우는 달, 9월은 벼꽃 닮은 사람을 만나는 달, 10월은 해도 보고 땅도 보는 달, 11월은 뿌린 것보다 더 거두는 달, 12월은 반복을 사랑하는 달. (10-11p)

자연과 한층 더 가까워진 삶 속에서 농사와 글쓰기가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저자의 섬진강 옆 집필실 이름은 '달문의 마음'이라는데, 그 이유는 달문을 알든 모르든 계속 이 한없이 좋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고 싶어서 정했다고 해요. 달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예수의 삶과 겹쳐지며,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폭력을 동원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설명에 어떤 삶과 마음인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어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고, 그런 사람과 사귀고 싶네요.

초보 농사꾼이라서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섬진강 들녁과 논밭의 이야기들은 하루도 지루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글 속에 저자의 마음이 흠뻑 스며들어 있어요. 누군가는 하찮게 여기는 것들, 소소한 일상의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있네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느긋하지만 부지런하게 오늘을 살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어요.



발탈이랍니다

5월 25일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에 그치지 말고, 가슴에서 발까지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흙을 한 줌 쥐어본다. ... 스물 살 이후 서울로 올라와서는 흙을 온전히 밟기도 힘들었다. 흙을 덮은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을 당연하게 여기며 지냈다.

밟던 흙을 쥐면 참 다르다. 선 채로 내려다보는 것과 앉은 채 움켜쥐고 들어서 보는 것은, 단순히 각도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땅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다. 밟히라고 흙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흙의 생명력에 탄복하는 글을 남겼다.

... 남도에서는 이미 모내기가 한창이다. 손 모내기를 위해 맨발로 논에 들어서면, 논흙들이 발가락 사이를 밀고 들어온다.

... '손으로 해도 될 일을 왜 구태여 발로 하는 걸까.'

한혜선 소리꾼에게 전통연희 '발탈'에 대해 듣고 유튜브로 공연을 찾아보며 든 첫 질문이다. ... 발탈은 발에 탈을 쓴다...

... 탈을 쓴 광대가 얼마나 발을 잘 놀리느냐에 따라 판의 성패가 좌우된다. ... 밟고 군림하는 수단이 아니라 흙과 다채롭게 만나는 방편으로 발을 놀린 광대들에게서 발탈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발로 하는 탈놀음을 추하다 어리석다 불편하다 여기지 않고, 얼굴과 손으로 소통하듯 발로도 할 수 있다는 첫 생각이 귀한 것이다. 

(161-163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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