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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소설집이에요.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이야기 열두 편이 실려 있어요.
처음엔 잘 모르다가 조금씩 서서히 스며드는 봄비 같은 이야기.
평범하게 연애하다가 이별하고, 누군가와 결혼하여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그러나 그 일상 속에 남들은 모르는 뭔가가 숨겨져 있어요. 사람 사는 풍경이랄까.
우리는 타인의 아주 작은 일부분, 삶의 한 조각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한 걸음 떨어져서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는 건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단편집이기는 하지만 온갖 과자를 섞어 놓은 과자 상자가 아니라, 사탕 한 주머니'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냈다는 의미일 거예요. 웃고, 울고... 사는 동안 겪게 되는 모든 일이 항상 뜻대로 되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살아낼 수밖에 없기에.
사실 '울 준비'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냥 '눈물'로 바꿔서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 이야기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 멋진 삶을 꿈꾸지만 피할 수 없는 이별과 아픔 그리고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에쿠니 가오리는 덤덤하게 그러나 세밀하게 소설 속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어요. 몰입할 만큼 대단한 사건은 없지만 잔잔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에요. 전진, 또는 전진이라 여겨지는 것, 뒤죽박죽 비스킷, 열대야,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골, 생쥐 마누라,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 걸, 주택가,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 손,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잃다... 단편소설의 제목들을 나열해보니 각각의 이야기가 보여준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시호가 말했다.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89p)
문득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과 어울리는 노래가 생각났어요. 굉장히 오래된 노래인데, 그동안 가사가 참 난해하다 싶었거든요. 근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참 이상한 것 같아요.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 (이상하다 그치) 잠이 오면 나는 잠을 자 (이상하다 그치?) 자면서 너에게 편지를 써 (정말 이상하지) 자면서 나는 사랑을 해 (아참~ 이상하다 그치)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보여~ ♪"
'나는 인간 모두가 자기 의지대로 커다란 몸짓으로,
자기 인생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렷하고 결정적인 방법으로.'
이렇게 말한 사람은 프랑수아즈 사강입니다.
사람들이 만사에 대처하는 방식은 늘 이 세상에서 처음 있는 것이고
한 번뿐인 것이라서 놀랍도록 진지하고 극적입니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급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003년 깊은 가을 (209-21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