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평점 :
굿잡이라니,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일까요.
주인공 모연희는 '미래클리닝'이라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는데, 그 사연이 기구하네요.
1997년 12월은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신청을 하며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였어요.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에 꼽는 대기업과 은행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고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지면서, 갑자기 직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린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 참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시기였네요.
연희 아버지 역시 외환위기로 빚더미에 앉자 집을 나갔고 한 달 뒤 인적 드문 숲에서 유서와 함께 발견되었어요. 아버지는 떠났지만 남긴 빚은 고스란히 연희가 떠안게 되었고, 이듬해 연희를 괴롭히던 사채업자가 취업 알선을 한 거예요. 바로 미래클리닝이라는 청소업체인데 실상은 은밀하게 시체를 처리하는 불법 조직이라 고소득 보장인 거죠.
세상에 누가 돈 때문에 이런 일을 할까 싶지만, 절박한 사람들에겐 선택할 권한이 없다는 게 비참한 현실이자 살아 있는 지옥인 것 같아요.
우와, 이 지옥 같은 굿잡에 몰입하게 될 줄이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은 너무 슬프지만 때로는 살다보면 살게 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질긴 생명력, 삶은 이어져야 하니까요.
상상도 못했던 시체 청소부가 된 연희의 삶을 통해 범죄의 세계를 엿본 느낌이에요. 점점 들여다볼수록 처음의 공포가 아픔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견딜만한 고통이라면 투덜거릴 수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침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불행, 그 어둡고 탁한 사연들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깊은 한숨을 짓게 되네요. 이 모든 게 돈 때문에, 그냥 먹고 사는 문제라고? 글쎄,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도 잘 버텨낸, 무자비한 세상에 맞서 꿋꿋하게 살아낸 이들에게 "굿잡!"
"버려진 폐허 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365p)라는 마지막 문장이 강렬한 여운을 남기네요. 그동안 하얀 눈이 내린 아름다운 풍경만 봤다면, 《굿잡》은 그 눈이 걷힌 적나라한 비극을 보여주고 있어요.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