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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깨비, 홍제 - 인간의 죽음을 동경한
양수련 지음 / 북오션 / 2022년 3월
평점 :
우리에게 도깨비의 이미지는 한 편의 드라마 이후 180도 달라진 것 같아요.
전래동화 <혹부리영감>에 나오는 도깨비는 머리에 뿔 달리고 촌스러운 호피 팬티에 방망이를 든 모습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도깨비는 일본의 오니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우리나라 도깨비는 뿔이 없고 빗자루, 달걀, 김서방 등 성격에 따라 변화무쌍했다는데, 아마도 해리포터 이후 세대에겐 요정이나 트롤이 더 친숙하다보니 도깨비는 그야말로 관심 밖의 존재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랬던 도깨비가 드라마에서 수려한 외모를 지닌 불멸의 존재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었어요.
《나의 도깨비, 홍제》는 양수련 작가님의 판타지 스릴러 소설이에요.
앞서 도깨비의 소개가 장황했던 건 이 소설이 드라마 못지 않은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에요. 쓸쓸하고 찬란한 도깨비의 모습이란... 자꾸 그 얼굴이 떠오르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찢남으로 홍제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읽었더니 몰입감이 최고였어요.
"홍제, 나의 홍제!"라고 불러보고 싶을 만큼 도깨비 홍제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네요.
물론 처음부터 홍제가 이토록 멋졌던 건 아니에요. 도깨비 섬의 수령 노릇을 할 때는 참으로 못된 도깨비였어요. 권력자의 오만방자함이 지나쳐 화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어요. 수령 홍제는 인간을 조롱하며 술상 위 안주처럼 이야기하기를 즐겼는데, 이를 보다 못한 무녀 비령이 귀설과의 내기를 제안했어요. 홍제와 귀설 중 누가 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홍제가 내기에 지면서 벌칙을 받게 되는데, 귀설의 것을 능가하는 이야기를 가져오는 거예요. 그리하여 도깨비의 잔치는 끝났고, 홍제의 벌칙 수행이 시작되었어요.
매일 풍류를 즐기며 룰루랄라하던 홍제는 한순간 책 속에 갇힌 채로 인간 세계에 떨어진 거예요. 인간이 펼쳐보지 않는 한 책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홍제는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어요. 드디어 책을 펼친 인간은 홍제를 통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 대가로 홍제가 바라는 건 인간의 감동적인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아무도 귀설의 이야기를 능가하지 못했고,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불멸의 도깨비 홍제는 번번히 인간에게 배신 당하면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이 조롱하던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아하, 도대체 영혼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읽는 내내 홍제가 완수해야 할 그 벌칙에 꽂혀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뭉클한 감동이 터졌어요. 눈물 찔끔... 다만 아쉬운 건 오르와의 이야기 비중이 너무 짧았다는 거예요. 드라마였다면 여주인공은 당연히 오르일 텐데 소설인지라 불멸의 삶을 사는 홍제에게는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왜 그 주어진 시간이 짧은 걸까요. 봄날의 꽃은 시들고 바람은 스치는... 그래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도깨비 홍제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