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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기억
김경원 지음 / 델피노 / 2022년 4월
평점 :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나요?
아마 다들 있을 거예요. 단순히 부끄러운 흑역사라면 조용히 덮어두면 그만이지만 기억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면 어떨까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용어는 근래에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신적 충격을 수반하는 사고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살면서 두려웠던 경험, 끔찍했던 경험, 힘들었던 경험, 그 어떤 것이라도 있다면, 그것 때문에 지난 한 달 동안 다음의 다섯 가지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어디까지나 자가진단이므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병원에 가야 해요.
하나. 그 경험에 관한 악몽을 꾸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그 경험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둘.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그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였다.
셋. 늘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거나, 쉽게 놀라게 되었다.
넷. 다른 사람, 일상활동, 또는 주변 상황에 대해 가졌던 느낌이 없어지거나, 그것에 대해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다섯. 그 사건이나 그 사건으로 인해 생긴 문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기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 개 정도는 정상이고, 2개는 주의 요망이며 3개부터는 심한 수준이므로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솔직히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다면 관련 기억을 지우고 싶을 것 같아요.
《이기적인 기억》의 주인공 유진우는 반복되는 악몽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어요.
박 원장은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약물 처방을 해주는데 별 효과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예비장인과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료를 받고 있어요.
진우는 병원 접수대 위에 놓인 책자에 눈길이 갔어요. '기억 교정센터'라고 적힌 빨간 글씨의 제목 아래 "후회되는 순간이 있습니까?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까? 괴로운 순간이 있습니까?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기억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20-21p)라고 쓰여진 그 책자는 좀 전에 어떤 남자가 박 원장에게 홍보물이라면 건네주고 간 거예요.
진우는 자신이 악몽을 꾸는 이유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건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애를 쓰고, 최면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어요. 더군다나 예비장인은 진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일 년간의 유예기간을 줬어요. 그 기간동안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해보이라는 거죠. 여자 친구 혜원은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데, 진우는 악몽과 개 공포증을 숨긴 채 미루고 있는 상태예요.
신기하게도 인간은 감당하지 못할 충격을 받으면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즉 기억상실증을 겪기도 해요. 어쩌면 진우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기억도 무의식의 방어기제였을 거예요. 조금씩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예기치 못한 비밀과 마주하는데... 와, 이럴 때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올 것 같아요. 결국 진우의 선택은... 인간의 기억이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한 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진우의 상태는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놀라운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