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 우수영에서 강원도 수류산방까지 마음기행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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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열두 해가 흘렀네요. 

떠나신 그 빈 자리가 막막했는데, 법정 스님의 재가제자 무염 정찬주 작가의 책이 봄날의 꽃처럼 찾아왔어요.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는 마음기행 산문집이에요. 이 책과 더불어, 10년 전 쓰여진《소설 무소유》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어요.

굉장히 반가운 두 권의 책 덕분에 추웠던 제 마음에도 봄볕이 들어온 느낌이에요.《소설 무소유》를 통해 법정스님의 일생을 한 편의 이야기로 만났다면,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는 저자가 실제 스님이 머물렀던 공간들을 순례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순례길이라고 하면 많이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리는데,  책을 읽고 나면 달라질 것 같아요. 우리에겐 법정스님의 무소유 순례길이 있으니까요.

스님의 고향인 해남 우수영, 학생 시절에 수학여행을 갔던 진도 쌍계사, 스승이신 효봉스님을 모시며 수행자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통영 미래사, 큰스님으로 계셨던 송광사 불일암까지 무소유의 길을 걸었던 스님의 자취를 따라 가보는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이미 마음 속에 순례길을 담아두었어요.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그곳.

물론 무소유 순례길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두 권의 책을 완독하는 것이 필수일 것 같아요. 공간의 의미는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으니까요. 법정 스님의 삶을 기억하고 무소유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순례길을 걷는 여정이 축복이자 행복일 것 같아요.

저자는 불일암에서 처음 법정 큰스님을 뵈었다고 해요. 당시 샘터사에서 근무하며 스님 책을 편집하느라 종종 찾았는데, 회사 일로 가는 출장길인데도 1박 2일 출가하는 기분으로 서울을 떠나곤 했대요. 몇 년 뒤 회사 일과 상관없이 스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불일암을 찾았을 때, 저잣거리에서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과 함께 계첩(불교의 수계식 이후 계를 받았다는 증명서)을 주시면서 오계를 받는 공덕이 무엇인지 법문을 해주셨대요. 오계는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자 내 행동을 바로잡아줄 신호등과 같다'라는 요지의 말씀이었대요. 그해 여름에는 분홍빛 한지에 휘호를 써주셨는데, 그 내용이 저자의 인생 좌우명이 되었대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22p)


불일암에는 삼나무 숲길 위로 대숲이 있는데, 책 속 사진에서 아침 햇살이 드리운 대나무숲과 불일암 사립문을 볼 수 있어요.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23-25p)는 법정스님이 즐겨 읊조리시던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도천의 시라고 해요. 사립문에 들어서는 사람은 대나무 그림처럼 무엇에 집착하지 말고 달빛처럼 자신의 발자국에 연연하지 말고 살라는 가르침이라고 하네요. 복잡한 일상에서 아무런 집착, 번뇌 없이 살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적어도 불일암에서는 가능할 것 같아요. 아직도 불일암에 '빠삐용 의자'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불일암은 스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찾는 곳인데, 바로 그곳이 '버리고 떠나기'의 장소였어요. 46년 전 스님이 암자를 지으면서 심었던 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모셔져 있어요.

저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삶이 준 가르침은 '버리고 떠나고 나누기'이며, '무소유는 나눔이다'라고 이야기하네요. 스님은 가셨지만 여전히 함께 할 수 있는 건 무소유의 정신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어요. 부디 2022년 대한민국에도 맑고 향기로운 마음이 퍼져나가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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