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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저씨'의 이미지는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아재 개그'처럼 촌스러움, 진부함을 풍길 뿐.
그러나 이 소설 속 '아저씨'는 여학생, 소녀들에게 매우 유해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요.
그 '아저씨'들의 정체가 전혀 낯설지 않은 건 우리나라에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여학교 앞에 출몰하는 바바리맨, 전철이나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여성에게 불쾌한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남성들, 학교나 직장에서 '여자가 감히~' 운운하는 무개념남, 노골적인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훑어대는 성추행범 등등
여기서 굳이 여학생, 소녀들을 타겟으로 삼는 중년남성 '아저씨'를 주목한 이유는 일본 특유의 문화와 관련이 있어요. 유독 일본에는 여학생 교복 코스프레가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전부 '아저씨'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려는 변태 성향이었네요. 일본 아이돌 걸 그룹을 전국적으로 모집하여 운영한 것도 '아저씨'였고,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소녀들의 미숙함을 즐긴 것도 '아저씨'였다니, 너무 소름돋았네요. 일본 소녀들은 어릴 때부터 순종적인 태도를 강요받기 때문에 여럿이 모여도 소곤거리고, 큰 소리나 튀는 행동을 꺼리게 된다고 해요. 그래서 콘서트장에서도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조용히 팬심을 표현한다고...
"잘은 모르지만, 일본은 특히나 안 좋은 의미로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나라잖아.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나 할까. 여성을 그렇게 만드는 남성의 존재는 무시하고
여성만 문제 삼고 비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그 구조 자체는 결코 문제시하지 않고 말이야. 남자들은 그냥 투명인간인 셈이지." (61-62p)
주인공 게이코는 얼마 전 퇴사하여 친구가 있는 캐나다에 한 달 여행을 다녀왔어요. 게이코는 자유로움을 맘껏 즐기던 캐나다와는 달리 일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질감을 느끼게 돼요. 뭔가 부자연스럽고 답답한 느낌... 그 이유는 곧 밝혀져요. 그리고 게이코는 우연히 빌딩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 화면에 나오는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아이돌 XX 의 눈빛에 압도당하고 콘서트장을 갈 정도로 열렬한 팬이 돼요. 게이코가 걸 그룹 아이돌 XX 에게 빠져든 이유는 앞서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과 연관되어 있어요. 음,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설득되는 부분이에요. 일종의 탈출구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됐든 똑같은 아이돌 팬이라고 해도 '아저씨' 팬들과는 확실한 구분이 필요해요. 일방적인 소비 행태가 아니라 궁극적인 소통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달라요. 그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다음의 소동이 전혀 놀랍지 않을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아저씨'들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 세상에 '아저씨'들이 사라진다면... 답답함이 풀리면서 나쁘지 않은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왠지 일본의 미래를 앞당겨서 본 것 같았어요.
영혼은 닳는다.
게이코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쯤이었던가.
영혼은 지치고, 영혼을 닳는다.
... 30년 이상 살아온 게이코는 이제 자신의 영혼은 아무리 가득 충전한대도
82퍼센트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게이코의 영혼은 과연 인생의 어느 단계까지 100퍼센트였을까. (13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