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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평점 :
코로나19 팬데믹, 벌써 2년이 흘렀네요.
여전히 우리 삶은 바이러스 영향권에 있지만 초기의 충격을 떠올리면 지금 익숙해진 일상이 신기하게 느껴져요.
정말 먼 훗날에 지금을 돌아보면 어떻게 기억할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소설이에요.
원제목은 '아주 오래전 그때는'이라고 해요. 소설은 2080년 12월 밀라노에 살고 있는 마티아가 손자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되네요.
"나는 바이러스 때문에 내가 끔찍이 싫어하던 사람과 집안에 격리되어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9p)
2020년의 마티아는 아홉 살 소년이에요. 엄마 타냐와 아빠 안드레아는 별거 중이고 각자 애인이 있어요. 열여섯 살인 로사나 누나는 친아빠가 따로 있지만 안드레아를 아빠라고 불러요. 하지만 마티아는 아빠가 싫어서 젬마 할머니랑 안드레이라는 별명을 붙였어요. 슈퍼 히어로가 필요한 마티아에게 아빠는 슈퍼 히어로는커녕 아빠 노릇도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바이러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티아의 집에 머물게 된 아빠로 인해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게 돼요.
만약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법정에 제출된 이혼 서류는 깔끔하게 처리되었을 것이고, 마티아는 아빠를 절대 아빠라고 부를 일이 없었을 거예요. 서로 만나기도 꺼려했던 엄마와 아빠는 한집에 살면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아파트 이웃들간에도 소소한 다툼과 오해가 발생하게 돼요. 위기의 순간에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
외출하기 싫어하는 마티아를 엄마는 단순히 투정이나 변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두려움 때문이에요. 마티아는 자신을 지켜줄 슈퍼 히어로가 없기 때문에 무서웠던 거예요. 그래서 봉쇄 조치로 집에만 있게 된 것이 내심 좋았는데 로사나 누나는 막 사귀게 된 남자 친구를 만나지 못해서 울상이 되었고, 엄마와 아빠도 걱정이 많아 보였어요. 전염될까봐 항상 조심하는 엄마는 포옹도 해주질 않아요. 혼자 외로운 마티아를 위로해주는 건 아기 고양이 피치포와 구름처럼 폭신한 의자 퍼프예요.
꼼짝 없이 집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게 고역인 줄 알았는데 마티아는 가족들의 대화 소리를 듣게 되고, 어색했던 아빠와도 제법 말을 나누게 돼요. 또한 아파트 주민들 중에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다들 반응들이 좋았어요. 이전에 그랬다면 소음이라고 경찰에 신고했을 텐데 말이죠. 어른들이 뭔가 달라졌어요. 겨우 아홉 살이 뭘 알겠냐고 얕보면 안 된다고요. 마티아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해서 몰래 속이거나 감추려고 해도 다 알아요. 물론 아빠와 엄마의 관계는 전부 이해하긴 어렵지만 괜찮아요. 왜냐하면 사랑하니까요.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를 굳건하게 지켜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네요. 마티아 아빠가 말했던 '다섯의 규칙'도 누군가에겐 힘이 됐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걸 기억한다면 어떤 순간이든 이겨낼 수 있어요.
"엄마, 엄지손가락 이야기 해줄래요?"
"어떤 엄지손가락?"
"그 이야기 있잖아요. 할머니는 집게손가락, 로사나 누나는 가운데, 나는 넷째 손가락, 이모는 새끼손가락이요.
그래서 엄마의 '이유'는 모두 함께 손에 있는 거라고 했잖아요. 엄지손가락이 누군지 말 안 해주셨어요.
아빠에요, 제노 조르치에요?"
엄마가 웃음을 터뜨렸는데 아주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아니야, 마티아."
이렇게 말하며 내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엄지손가락은 엄마야. 처음부터 언제나 나였어.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이야."
엄마는 손가락에서 양파 모양의 반지를 뺐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절대 안 된다고, 생각조차 안 된다고 금지시켰던
행동을 망설임 없이 했다.
내 옆에 누워 나를 꼭 안아준 것이다. (273-27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