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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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19p)


<일기 日記>는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좀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정식으로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도 몰래 타인의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솔직하고 은밀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였어요. 어떤 날은 나와 비슷한 일상이라 반가웠고, 어떤 생각은 깊이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시시콜콜한 일상의 기록이라고만 여겼는데 일기장을 넘기듯 하루하루, 저자의 삶이 녹아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깊숙한 마음 그늘진 그곳까지 이르렀네요. 덤덤하게 들려줬지만 꽤 아프고 괴로웠을 흉터... 얼굴의 흉터보다 마음에 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니, 당신에게 이 말을 되돌려 주고 싶네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184p)


3월 8일.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로렌 아이슬리『광대한 여행』, 김현구, 강 2005 

이 문장이 계속 생각나 책을 찾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이유로 

대규모 재난에 자국민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미얀마 군부는 2021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거리에서 총을 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무섭지도 않은가?

사람들은 기억한다.

...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76p)


이번 책을 통해 황정은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두고두고 첫 문장을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건강하시기를."  (8p)

저자는 이 문장을 오랫동안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고 해요. 지금 우리에게 딱 필요한 말인 것 같아요. 진심으로 누군가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지금 간절하게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대상이 있어요. 건강한 대한민국, 올바른 선택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책 제목을 일기로 붙였다는 저자의 말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어요. 우리에게 소소한 일상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요. 그러니까 <일기 日記>​는 우리에게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다정한 목소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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