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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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해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냥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해독된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좀더 일찍 알았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그건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늘 궁금해서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다가왔어요. 그다음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뒀던 뭔가가 불쑥 튀어나오는 경험을 했어요.

그건 끝까지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묵은 감정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비비언 고딕으로 인해 심연 속에서 끌어올려졌어요.

비비언 고딕의 <사나운 애착>(1987)은 자전적 에세이로『뉴욕타임스』'지난 50년간 최고의 회고록', 『옵서버』'20세기 100대 논픽션'에 선정되며 지금까지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책이라고 해요. 왜 이토록 극찬을 받았을까요.

우선 이 책은 뛰어난 위인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평범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특별한 점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적나라하다는 점이에요. 아마도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가 말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물론 삶의 방향과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삶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에 감탄했어요.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요.

저자는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던 다세대주택의 여자들을 떠올리며, 무려 30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인생에서 만난 수많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있겠지만 주목할 만한 인물, 가장 의미 있는 존재는 엄마라는 걸 아주 소심하게 인정하고 있어요. 엄마와 딸로서 함께한 삶에서 같이 살아남았고 모든 순간은 아니지만 서로의 곁을 지키며 동지애를 키웠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여전히 삐딱하게 굴 때가 많지만 화내고 다투고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 그 사나운 애착에 관한 모든 것을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놀라웠어요. 그 덕분에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네요.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아도 지금 살아숨쉬는 우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돼요. 때때로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어쨌든 살아 남았으므로,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나이들수록 삶에 대한 집착이 커진다고 여겼는데, 그건 집착이 아닌 애착이 아닐까요. 알면 알수록 떨어지기 싫은 애착.



내 인생의 남자들, 그들과의 관계를 하나씩 돌아보았다.

스테판, 데이비, 조. 그들은 제각기 너무나 다른

사람들처럼 보였고 따로 보면 그렇기도 했지만 

나는 이 남자들과의 애착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이들과 잠시 잠깐 숨어 지냈을 뿐이었다. 

''' 책상에 앉았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에 매달렸다. 

썩 잘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책상이 -

사랑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아닐지언정 - 잠재적

구원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293-294p)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렇네." 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300-3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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