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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든스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2년 1월
평점 :
참으로 오묘한 소설이네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범인을 찾는 일보다 그리스 비극이 더 궁금해지니 말이에요.
그리고 하나 더, 앨프리드 테니슨이 쓴 『인 메모리엄 A.H.H.』라는 책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계속 앞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
영원히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봐서는 절대 안 돼. 미래를 생각해."
"솔직히 말해서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아요...... 별로 볼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전부......"
"마치 베일 뒤에 가려진 것 같아요. 이게 어디서 온 말이죠?
베일 뒤, 베일 뒤......"
"테니슨이지. 『인 메모리엄』의 56번째 연일 거야.
... 오, 삶은 부질없고 연약합니다!
오, 달래주고 축복해줄 당신의 목소리!
대답 또는 보상의 희망은 무엇인가?
베일 뒤, 베일 뒤에서......" (109p)
주인공 마리아나는 서른여섯 살의 심리상담가예요. 그녀는 지금 너무도 힘든 애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일 년 전 남편 서배스천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슬픔과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제 마리아나 곁에 남은 가족은 조카 조이뿐이에요.
언니 부부도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바람에 마리아나와 서배스천이 어린 조카를 자식처럼 돌보았는데 벌써 스물한 살의 대학생이 되었어요. 지금 조이는 케임브리지 성 크리스토퍼 칼리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곳은 마리아나가 신입생 시절에 서배스천을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해요. 조이가 10월 그날 밤 케임브리지에서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고, 악몽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내 눈이 부시니' 범인은 시체들을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겁니다.
우리 눈이 부시게 하기 위해서요. 두려움으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한 거죠. 이유가 뭐죠?"
"몰라요."
"생각해봐요, 범인은 왜 우리의 눈을 멀게 하려는 거죠? 그가 우리는 보지 못했으면 하는 게 뭘까요?" (302-303p)
케임브리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어요. 피해자는 여학생 타라, 조이의 유일한 절친이에요. 마리아나는 조이로부터 담당 교수 에드워드 포스카와 타라가 은밀한 관계였다는 얘길 듣게 되고, 점점 그가 살인자라는 심증을 굳히게 돼요. 포스카 교수는 이번 학기에 그리스 비극을 가르치고,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특별한 모임을 지도하고 있어요. 공교롭게도 희생된 여학생들이 모두 그 모임에 소속되어 있어요. 모든 게 심증일 뿐, 포스카 교수는 확실한 알리바이로 경찰을 속이고 있어요.
마리아나는 심리상담가지만 탐정처럼 에드워드 포스카를 조사하면서 연쇄살인마가 그리스 비극을 통해 뭔가 메시지를 남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은 그리스 신화, 비극, 심리분석을 통해 낱낱이 해부되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요. 눈 뜨고도 보지 못했던 그것. 그동안 베일 뒤에 가려서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그것을, 마지막까지 착각하고 있었다는 게 꽤 충격적이에요. 설마, 계속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소설 속 반전, 그냥 반전이라고 표현하기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타격감이 크네요.
<메이든스 The Maidens>를 깊이 있게 감상하려면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를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테니슨이 핼럼을 잃고 나서 17년 동안 슬퍼하며 썼다는 시에 관한 사연이 강렬해서, 핼럼을 테니슨의 아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동성 친구였어요.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인 것 같아요. 인간이란 아름답고도 잔인한 짐승...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는 진실로 인정합니다
더없이 슬플 때 저는 그걸 느낍니다.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사랑했다가 잃는 편이 낫다는 것을.
- 『인 메모리엄 A.H.H.』중에서 (116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