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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미술관 - 예술 애호가의 미술 사용법
임지영 지음 / 플로베르 / 2022년 1월
평점 :
미술관에 가본 지 정말 오래된 것 같아요.
친근한 공간은 아니지만 늘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 보면 그곳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요.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위대한 예술을 영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장 느린 속도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속도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생의 좋은 것이 흘러든다.
그림 한 점이 흘러든다.
... 그림 한 점을 보며 내놓는 이야기가... 큰 강이 된다." (7p)
<느리게 걷는 미술관>은 저자의 말처럼 그림 한 점이 우리 마음 속에 스며들어 큰 강이 되는 책이에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언제부턴가 진지한 인생 이야기는 구닥다리로 밀려난 것 같아요. 편안하게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현실이 너무 팍팍하니까... 그런데 저자는 예술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마주하며 살아서 그런지 예술과 인생 이야기가 아무런 경계 없이 자유롭게 흘러나오네요. 왠지 예술의 세계는 벽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와는 무관한 세상일 것 같았는데, 책 속에 실린 작품들을 보며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예술은 우리 삶 안에 숨쉬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미경 작가님의 <여여하게>는 어두운 강, 그늘진 산 그림으로 아득한 저물녘 풍경이 담겨 있어요. 다소 어두운 분위기인데 저자가 만나 본 이미경 작가는 어두운 데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작품의 제목이 된 '여여함'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이며 산스크리트어로 본연의 모습을 의미한대요. 말도 뜻도 어여쁜 '여여하게'에 끌린 건 온전한 나로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마치 지금 마음의 색을 반영한 듯. 그러니 저마다의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 거예요.
김춘재 작가님은 밤을 그리는 작가라고 해요. 수많은「밤」시리즈 가운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실려 있어요. 저자가 만난 김춘재 작가는 마흔이 된 영락 없는 소년의 모습이었고, 밝게 웃는 얼굴로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얼굴로 알 수 있는 건 그날의 기분과 지금의 상태였을 뿐, 그림을 통해서 진짜 마음 속 심연을 볼 수 있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대부분 어둠과 그늘을 외면하지만 그 속에 진실이 숨겨져 있어요. 어둠 속의 안온함, 그 깊음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자는 오랜 시간 그림을 보며 글을 써왔고, 강의를 해왔다고 해요. 최근에 '미술 에세이 수업'을 열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그림 한 점을 보고 느끼고 글을 써서 발표하면서 예술을 향유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하네요. 모두 다르지만 그 다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건 바로 예술의 힘일 거예요. 아무래도 따스한 봄날이 오면 미술관에 가야겠어요.
예술은 건드리는 것이다.
마음 얕은 데든 깊은 데든, 자극하는 것이다.
어두운 그림은 마음속을 파고든다.
따뜻한 감성이 스미고 번져 나를 물들인다.
물든 마음은 힘이 세다. (21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