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렌 허프 지음, 정해영 옮김 / ㅁ(미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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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 엄마가 울기 시작했고 나도 울었다.

그러고 나서 웃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배심원들은 자신들이 내린 평결에 의구심을 느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웃겠는가?

누가 재판을 받고 나서 웃겠는가? 광신 집단에서 자란 사람은 웃는다. 물론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어쩌면 그건 단지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한 번, 어쩌면 내 일생에 단 한 번 우리 부모님이 나를 옹호해줘서 

내가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77p)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는 로렌 허프의 에세이예요.

밋밋한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다르게 보였어요. 단단한 돌멩이, 그게 바로 로렌 허프의 삶이었어요.

광신도 사이비 집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 공군에 입대하여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다가 제대한 뒤 길거리를 전전하며 살았어요.

거의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황에서 진짜 가족과 연락하지 않은 건 수치심 때문이었다고 해요. 집단에서 쫓겨난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 절망적인 순간에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는 건 놀라운 정신력이에요. 패밀리라고 부르는 광신 집단에서 탈출했고, 동성애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로부터 자신을 지켜냈어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평범한 가족 안에서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은 개뿔, 그건 자유의 여신상을 세운다고 이뤄지는 게 아닌 거죠. 미국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사건들이 존재하고, 로렌 역시 피해자였지만 도리어 자작극으로 오해를 받아 재판까지 받았어요. 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때, 로렌은 웃었어요. 이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로렌 허프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어요. 로렌에게 있어서 부모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주었을 뿐이지 한 번도 사랑과 격려를 준 적이 없었어요. 근데 그 재판에서 처음으로 두 사람이 로렌의 편이 되어준 거예요. 암흑 속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것인지... 

솔직히 로렌 허프가 살아온 삶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할 말을 잃을 정도였는데, 그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줘서 슬펐어요. 그리고 화가 났어요. 누구를 향한 분노일까요. 주류 사회에 속하지 못한 아웃사이더, 그들의 불행이 여기 눈앞에 있어요. 과연 정상이 뭐길래, 인간을 제멋대로 분류하고 차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요. 누구도 함부로 타인의 삶을 판단하지 말 것,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 그래서 로렌 허프의 삶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어요. 이리저리 채이는 돌멩이 같아서, 그럼에도 부서지지 않고 더욱 단단하게 살아냈으니 된 거라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은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에요... 로렌 허프의 마지막 말은 정말 울컥하게 만드네요.


"나는 집도 가족도 경력도 경제적 안정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비록 불완전할지 모르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는 여전히 행복과 평화, 소속감과 사랑이 

모두 다음 길모퉁이, 다음 도시, 다음 나라에 있다고 속삭인다.

그저 계속 움직이며 다음 장소는 더 나은 곳이기를 희망하라고 말이다.

반드시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다음번 굽이만 돌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449-4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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