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랑일지도 - 야마카와 마사오 소설선
야마카와 마사오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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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랑일지도>는 야마카와 마사오의 소설집이에요.

우선 "혜성처럼 나타나 단 한번 수상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작가"라는 소개글에 눈길이 갔어요.

「그 1년」으로 문단에 등장하여 다수의 단편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고,「여름의 장례 행렬」은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될 만큼 쇼트쇼트(초단편소설)의 대가로 인정받는 작가였으나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1965년 2월 교통사고로 서른다섯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작가의 활동 시기, 즉 작품 연도를 보면 그 시대상을 느낄 수 있어요. 

1964년 작품인 <아마 사랑일지도>의 주인공은 스물아홉 살에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믿는 남자예요.

스스로 고립되고자 하는 남자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그를 지탱하는 힘은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인 것 같아요. 10대 중반부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보니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아파서 장사를 그만 둔 어머니와 33세 미혼의 누나, 25세의 여동생과 함께 사는 일이 고달픈 건 가족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족쇄로 여기기 때문인 것 같아요. 때때로 불만을 폭발하는 어머니에게 지친 그는 하숙집을 구했고, 금요일마다 하숙집에서 가서 하루 종일 자거나 뒹굴대다가 일요일이 되면 일주일치의 일을 하곤 했어요. 그러다가 그 여자가 찾아왔어요. 토요일 저녁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떠나는 그 여자를 거부하지 않은 건 사랑하지 않으니 언제든지 끝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더욱 과장되게 꾸밀 수 있었고 여자가 듣고 싶은 "사랑해"라는 말도 쉽게 했던 거예요. 여자는 그걸로 만족했고 둘의 이상한 관계는 지속되었죠. 그녀가 발길을 끊은 뒤, 남자는 비로소 깨달았어요. 사랑을 부정했던 자신이 사랑에 빠져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게 허무하고 슬프네요. 마치 남자의 운명처럼.


"... 나는 이제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는 살 수 없다. 

하나도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관계니 일상이니 하는 것 속에 있어서 

이제는 나의 불안만을 고집하는 것이 옳다고도 믿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계절은 끝났다."   (72-73p)


1958년 작품인 <그 1년>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소년 오바타 신지예요. 한국전쟁이 한창 벌어질 때 일본 본토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해있고, 일주일에 한 번 군인들을 위한 밴드 공연과 댄스 파티가 있어요. 신지는 밴드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보이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다들 신지에게 '보야'라고 불러요. 마침 드럼이 빠지면서 신지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고, 무대 위에 오른 신지는 미군들과 춤추는 여자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검은 정장 차림의 여자를 보게 돼요. 그 '검은 여자'는 금발의 무테안경을 쓴 조용한 소년 같은 느낌의 키가 큰 오장(군대 계급 중 하나로 최하위 하사관에 해당함)과 늘 함께였고, 다른 남자와는 춤을 추지 않았어요. 밴드의 아다치는 신지가 '검은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어요.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밴드에서 쫓겨난 신지는 '검은 여자'를 잊지 못했어요. 만 열여덟 살이 된 신지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검은 여자'를 봤으나 신지에게 그녀는 '검은 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요. 신지에게 있어서 '검은 여자'는 흠 없는, 완벽한 존재였으니까요. 미군들에게 웃음을 파는 그녀들과 그 곁에서 비굴하게 살아가는 남자들... 신지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 꼭 1년. 그는 그 1년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이 끝없이 땅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검은 여자'는 과일 속의 썩은 씨처럼 자기 안에서 딱딱하고 검게, 과육에 파고든 채 응고하고 있었다."  (153p)


1962년 작품인「여름의 장례 행렬」은 정말 짧은 이야기예요. 주인공은 우연히 해안가 작은 마을에서 고구마밭 너머 일렬로 움직이는 작은 장례 행렬을 보았고, 봉인했던 십수 년 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어요. 전쟁 말기, 패전의 여름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과 아픔을 남겼어요. 왠지 일본이 우리에게 지녀야 할 마음이 아닐까... 

일본 문학계에서 극찬하는 작가의 소설집이기에 기대했는데 역시나 일본의 시대 정신을 보여주고 있네요. 전쟁 이후 젊은이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문학성은 인정하나 온전히 공감하기엔 괴리감이 있어요. 뭔가 불편하고 언짢았던 부분들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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