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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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끼리는 대개 처음 만나도 십년지기 친구마냥 금세 친밀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건 남자들이 슬쩍 상대를 견제하며 다가가는 방식과는 다르게 보여요. 똑같이 서먹하고 어색한 기류가 존재하지만 드러내느냐 숨기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은 조지와 앤이라는 두 여성이에요. 그녀들의 첫만남부터 얽히고 설킨 삶의 이야기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져요.

이 소설은 조지의 관점에서 4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1968년 대학 캠퍼스에서 룸메이트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어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조지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 앤의 일방적인 요청으로 룸메이트가 된 거예요. 앤은 자신의 룸메이트는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여학생이어야 한다고 특별히 요청했는데 진심으로 원했던 룸메이트는 흑인이었다고 해요. 그러나 바너드 칼리지의 거의 모든 흑인 신입생들은 자기들끼리 짝을 지었고, 나중엔 그들 대부분이 흑인 전용 층을 선택했으니 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죠. 처음엔 둘리였다가 이후 앤이 된 그녀는 "난 흑인이 되고 싶어."라며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자신이 부르주아 백인종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몹시 수치스럽고 끔찍하게 여겼어요. 반면 조지는 부유하고 풍요로운 앤의 환경을 동경했어요.

태생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여성이 룸메이트에서 절친이 되고, 사회에 나와 각자의 삶을 살다가 싸우고 멀어진 후 다시 만나는 과정들이 그저 개인사라고 하기엔 시대적인 이야기들이 녹아 있어서 미국 사회의 단면을 엿본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조지라는 것이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앤이 처음 만난 조지에게 "그런 여자들 있잖아." (11p)라고 말했을 때, 조지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조지는 살면서 클럽이니 파티니 하는 건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엄마가 된 조지에게 친구 클리오가 "하지만 그런 부류는 알지. 부잣집 응석받이들...... 결국 전부 난장판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망쳐놓을 뿐이지......" (600p)라고 말할 때 다르게 생각했어요.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앤을 떠올린 거예요. 완벽한 이상주의였던 그 친구의 열정적 믿음.

조지는 늘 겁쟁이였던 자신과는 달리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들었던 앤을 떠올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아본 적 없는 삶에 대한 동경과 회한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삶의 부류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이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한 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해주었다는 충고를 읽은 적이 있다.

"비결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것에 대해 차갑게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 말이에요" 

하지만 그 충고는 소설에 대한 것이었다.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가 '그'가 되지않고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낼 방도가 없었다. (419p)


『위대한 개츠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5번가를 따라 걸으며 군중 속에서 낭만적인 여자들을 골라내어 곧 아무도 모르게,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는 걸 좋아했다. (603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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