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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로 읽는 세계사 - 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
윤덕노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평점 :
문득 과일을 먹다가 '언제 생겨난 거지?'라는 궁금증이 스친 적은 있지만 거기까지였어요.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여겼거든요. 그런데 과일 속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네요.
<과일로 읽는 세계사>는 25가지 과일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다룬 책이에요.
우리에게 과일은 디저트 개념이지만 과거에는 진귀하고 값비싼 사치품으로 여겨졌다고 해요. 동양과 서양의 역사 속에서 과일은 단순한 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과일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그 과일과 얽힌 역사 이야기를 살펴보면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를 엿볼 수 있어요.
가장 신기했던 과일의 역사는 수박인 것 같아요. 여름에 즐겨 먹는 수박은 우리 토종 과일이 아니라 외래 과일이라고 해요. 수박의 원산지는 고대의 서부 아프리카로 추정되며 야생 수박은 물이 잘 빠지는 건조한 모래땅에서도 자라는 열매로 수분이 약 90%라서 사막지대 사람들의 필수 휴대 과일이었대요. 야생 수박을 품종 개량해 식용 열매로 재배하기 시작한 건 고대 이집트인들이었고 7세기에 인도로, 10세기 무렵에 중국으로 전해졌으며, 유럽에는 13세기에 무어인이 스페인을 침략할 때 퍼졌고 같은 시기에 몽골의 원나라가 고려에 종자를 퍼트렸다고 해요. 고려 말에 처음 전해진 수박이 조선 초만 해도 구하기 힘든 비싼 과일이었는데, 우리 역사상 가장 어질고 위대한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 수박 도둑에게 유독 대노하며 엄벌에 처했다는 것을 보면 그 가치를 짐작해볼 수 있어요.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처럼 신품종 채소나 과일의 종자는 단순한 씨앗이 아닌 국력을 좌우할 수 있는 일종의 첨단기술이었던 거죠.
수박은 전 세계 널리 퍼져 사랑받는 과일이지만 미국에서는 미움받는 과일이 되었어요. 미국에서 수박은 흑인을 멸시하고 비하하는 도구이자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과일이라고 해요. 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수박의 미국 전파 과정과 남북전쟁 이후 노예해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16세기 스페인 개척자들이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 수박 종자를 심었고, 17세기에 원주민과 개척민들이 수박을 재배했으며, 18세기 남부에서 흑인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 농업이 시작되면서 수박을 많이 심었대요. 이때 흑인들이 더위와 허기를 메우기 위해 수박을 많이 먹게 되면서 남부 백인들이 수박은 흑인 노예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라는 편견이 생겼대요.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자유 노예들이 수박을 재배해 판매하면서 돈을 벌었고, 수박을 자유의 상징으로 삼았는데, 일부 백인들한테는 그게 꼴 보기 싫었던 거예요. 1900년대 초반 신문과 잡지 등에서 수박을 먹는 흑인을 희화화하거나 열등하게 묘사한 캐리커처가 실리면서 수박이 흑인을 멸시하는 인종차별의 아이콘처럼 쓰이게 되었대요.
과일이 뭐길래, 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과일에 얽힌 역사를 통해 문화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어요. 과일 관련 역사와 문화를 몰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알고나면 과일만큼 맛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어요.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과일을 포함한 음식은 가장 핫한 주제였네요. 달콤새콤 맛있는 열매 과일 덕분에 흥미로운 역사 공부를 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