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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럽 - 당신들이 아는 유럽은 없다
김진경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2020년 팬데믹 이후 대한민국은 달라졌고,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어요.
반대로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어요. '선진국의 수준이 이 정도였나?'라는 놀라움 속에는 실망감이 컸어요.
『오래된 유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혼란에 빠진 유럽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이에요. 부제는 "당신들이 아는 유럽은 없다"예요.
《중앙일보》기자로 일했던 저자는 스페인 남자를 만나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스위스 현지 매체에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는 저널리스트라고 해요.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국사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을 포함한 세계사를 대략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유럽 여러 나라들이 낯설지 않아요. 하지만 스위스의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서 아시아에 대해 배우는 내용은 유럽과 접점이 있는 부분으로 제한되다 보니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크다고 해요. 많은 유럽인에게 아시아는 '지중해에서 일본에 이르는 거대한 덩어리'라는 것, 또한 K 드라마와 K 팝이라는 한류 열풍과 BTS가 세계를 제패했으니 당연히 서구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도 BTS급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에요.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 미국, 아시아 국가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객관적 비교가 가능해졌고, 그 덕분에 우리는 유럽을 보는 눈에서 장막을 벗겨냈고 한국이 선도 국가의 위치에 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 책은 유럽의 민낯과 논쟁으로 보는 유럽 사회,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유럽연합과 다문화를 보여주고 있어요.
저자는 2020년 내내 고민했던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 바로 '자유란 무엇인가', 와 '연대란 무엇인가'라고 해요. 직접민주주의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스위스에서 살면서 왜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매달렸을까요. 그건 코로나19 시국에 꼭 필요한 마스크 착용과 봉쇄 정책에 대해 시민 연대가 반대 구호를 외쳤기 때문이에요. 유럽인에게 마스크 착용과 봉쇄 정책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 행위이므로 거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인데, 이로 인해 초기 대응은 늦어졌고 엄청난 확산으로 상황은 악화되었어요. 또한 백신 관련된 가짜 뉴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백신을 거부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탓에 스위스에 코로나19 백신이 공급되자 백신 반대론자들은 조직적으로 거부 운동을 펼쳤다고 해요. 그들은 연대를 말하면서 정부 조치를 위반하고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지만 팬데믹 시대에 진정한 연대 행위는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이에요.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이 갈라지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스는 대립하는 성격이면서도 민주주의를 받드는 양대 가치라는 점에서 판단이 쉽지 않아요. 팬데믹이 전 지구를 휩쓰는 상황에서 개인의 감염 이력이나 동선을 일부 공개하는 건 피치 못할 결정이에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개인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을 주시해야 하며, 국가적 차원의 프라이버시 감시 기구가 필요해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최초 감염자가 나왔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한바이러스라고 떠들며 중국 탓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에는 아시안 혐오 범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혐오와 차별은 늘 존재했지만 현재 발생하는 인종 혐오 범죄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팬데믹과 경제 불황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과거와 달리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훨씬 더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에요. 특히 아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은 하나의 현상을 벗어나 증상이 되었다고 해요. 2021년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 여성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충격적이에요. 저자는 몇몇 매체에 유럽의 코로나19 관련 상황을 기고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유럽에 관한 생각이 흔들렸고, 그 시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해요. 유럽의 민낯을 공개한 건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단을 통해 더 나은 길을 모색하자는 의미인 거예요. 이제 한국은 저 멀리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어야 해요. 선진국으로서 어떻게 역량을 발휘하고 책임을 다 할 것인가. 『오래된 유럽』은 타산지석의 교훈을 주고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