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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SF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잔류 인구>는 감동적인 작품이에요.
<잔류 인구>는 행성에 남겨진 70대 노인의 생존기를 그려내고 있어요.
미래 세계를 그린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할머니라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행성이라는 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서 놀라웠어요. 인류의 거침없는 우주 진출과 모험을 펼쳐내는 스펙타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과 삶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예요.
주인공 오필리아는 모두가 떠나버린 행성에 혼자 남기로 결정했어요. 우리는 그녀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어요.
이제껏 새로운 세계라고 하면 우주 은하계를 떠올렸는데, 오필리아 덕분에 인간 내면에 품고 있는 우주를 발견한 것 같아요. 안과 밖, 늘 그 경계가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외계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생명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외계인이니까, 넌 인간이 아니니까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편견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가를 떠올리게 됐어요. 정상과 비정상, 세상 모든 것을 이분법적 사고로 보면 삶은 그저 죽음의 반대말일 뿐이에요. 그러나 오필리아는 달랐어요.
우리는 매일 조금씩 늙어가고 있어요. 그건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의 길이 궁금하다면 오필리아가 알려줄 거예요.
오필리아라는 이름은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녔어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등장인물인 오필리아는 햄릿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에요. 햄릿은 복수에 눈이 멀어 재상인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오해해 칼로 찔러 죽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아는 미쳐서 강물에 빠진 채 죽음을 맞이하게 돼요.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는 그 비극적인 죽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있어요. 강물 위에 떠 있는 오필리아는 뭔가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어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그건 덧없는 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찰나의 젊음일까요.
결국 우리도 언젠가는 그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겠지요. 중요한 건 지금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는 게 아닐까요.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 년을 쏟아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349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