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정말 신기한 노릇이에요. SF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이 생겨날 줄은 몰랐어요.

한 마디로 반전이라 놀라웠어요. 그 감정의 흐름들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걸 읽고 있는 순간 만큼은 그들이 된 것처럼 느꼈어요.

우리는 분명 이래선 안 된다는 '이성'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감정'에게 얼마나 쉽게 지는지 알고 있어요.

예전엔 감정에 빠져 이성이 마비된 행동을 보면서 인간의 나약함이라고 여겼어요.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니 그건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감정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기계 혹은 괴물일 거예요.

그런데 가끔은 헷갈려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기계처럼 완벽하고, 괴물처럼 무섭게 해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요. 아니겠죠?

무엇이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고 바꿔야 해요. 바로 지금.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두 개의 세계가 경쟁하며 시간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예요.

레드는 에이전시가 마련해 놓은 시간의 실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가서 미래를 헝클어뜨린 자들을 제거하는 요원이에요.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양측 군대 모두를 전멸시키는 무시무시한 임무를 맡고 있어요. 목숨 하나 죽이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탁월한 전사예요.

그런데 이번 전투에서 초토화 된 땅 위에 뜬금없는 물건을 발견했어요. 바로 편지. 크림색 편지지에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어요.

읽기 전에 태워 버릴 것.  (13p)

곧 레드는 자신을 쫓는 추적자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그 편지가 함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태워버렸어요. 추적자는 불에 타 재가 되고 있는 편지를 펼치더니 시간의 주름을 만들었어요. 재는 종이 한 장으로 바뀌었고, 편지는 블루가 쓴 것이었어요.

블루는 가든의 요원이에요. 가든과 에이전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시간 전쟁을 하고 있어요. 블루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시간 전쟁 속에서 활약을 펼치는 레드의 존재를 알게 됐고, 적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겼던 거예요. 최초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레드는 블루가 쓴 편지에 답장을 했고, 둘은 전혀 다른 시공간을 오가면서 쫓고 쫓기듯이 편지를 주고 받았어요. SF소설에서 편지를 매개체로 소통하다니, 굉장히 클래식한 것 같아요. 

사실 요즘 사람들도 편지 쓰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아요.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는 편지, 그리고 상대방이 언제 답장을 보낼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편지.

레드가 "편지는 시간 여행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안 그래? 난 내가 던진 사소한 농담에 웃는 네 모습을 상상하곤 해." (64p)라고 쓴 부분에서 감탄했어요.

시간 여행은 먼 미래 혹은 가상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우리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레드와 블루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인데도 편지를 매개로 소통하고 있어요. 서로 도발하고, 조롱하다가 조금씩 상대를 알게 되는 과정들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 것 같아요. 어느새 편지를 읽다보니 레드였다가 블루였다가 그들인지 나인지, 아니면 우리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마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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