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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잊어야 하는 밤
진현석 지음 / 반석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살면서 한 번도 기억이 끊겼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오래된 기억이 점점 옅어지거나 잊혀질 때는 있어도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을 통째로 기억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거죠.
만약 그랬다면 너무 소름돋고 무서울 것 같아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것 자체가 공포인데,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태에서 정신이 든다면... 으악, 상상조차 하기 싫어요. 자세한 줄거리를 생략하는 이유는 작품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예요. 이러한 작품일수록 스포일러는 독약이니까요.
<기억, 잊어야 하는 밤>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눈을 떠보니 주변에 끔찍한 일이 벌어져 있고, 자신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아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꼼짝없이 범죄자로 몰리게 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처음부터 경찰서에 신고했다면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졌을 텐데, 그는 일단 도망갔고, 상황은 점점 더 꼬여가고 있어요. 두려움과 혼란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를 보면서 스멀스멀 의심이 피어나네요.
# take 1 - # take 2 - # take 3 - # take 1 - # take 2 ...
각 장면마다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뭔가 혼란스러워요. '나'라는 인물과 그 사람은 어떤 관계이며,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은 누구인 걸까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 곁에 있는 사람 중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과 사라진 기억 사이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그것을 밝히는 과정이 너무나 촘촘하게 영화 take 방식으로 전개되어 흡입력이 있어요.
분명 누군가는 죽었고, 그 죽음에는 불길한 단서들이 남아 있는데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연이어 발견되는 시체들과 그 다음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라 말문이 막히네요.
사라진 기억과 그 기억을 쫓는 사람들.
극한의 공포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어요. 기억을 잃는다는 건 그 기억의 시간만큼 믿음이 사라졌다는 의미일 거예요.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들까지 모든 걸 의심하게 만들고 있어요.
# take 4 에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 take 5 에서 헉, 얼음이 되고 말았네요.
이럴 수가, 이건 기억의 삭제와 오류였구나! 에필로그야말로 진정한 뒤통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억, 잊어야 하는 밤>이네요. 놀라운 전개와 반전으로 강렬한 스릴러의 여운을 남기는 작품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