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평점 :
<열대>는 수수께끼의 책이에요.
이것은 제 감상평이 아니라 책에 적혀 있는 그대로 설명한 거예요.
솔직하게 수수께끼보다는 미로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면 이제 할 일은 하나뿐, 출구를 찾아 빠져나오는 것.
기묘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 느낌이에요. 이건 마치 암시를 통해 세뇌당하는 것 같기도 해요.
'넌 이미 책을 펼쳤고, 중간에 멈출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끝이 궁금할 테니까.'라고 속삭이는 듯.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원치 않는 것을 듣게 되리라." (9p)
<열대>의 첫 문장이에요. 저자 모리미 도미히코의 <열대>이면서 동시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1982년 출간된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라는 책의 첫 문장이기도 해요.
책 속의 책, 이야기 속의 이야기.... 자칫 하다간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저도 읽다가 여러번 앞으로 돌아가 누구의 이야기인지 다시 확인했어요.
주인공 '나'는 소설가인데 도통 글이 써지지 않아요.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마지막으로 붙든 위대한 작품이 바로 <천일야화>예요. <천일야화>라는 수수께끼의 책을 읽다가 문득 교토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 헌책방에서 발견한 소설책인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을 떠올리게 된 거예요. <열대>의 이야기는 한 젊은이가 남양의 어느 외딴 섬 바닷가에 표류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어요. 묘하게 끌리는 책이라서 조금씩 아껴 봤는데, 반 정도 읽었을 즈음 갑자기 책이 사라졌고, 그로부터 16년이 흘렀어요.
편집자에게 <열대>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다음 작품으로 <열대>에 관해 써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환상의 소설에 관한 소설.
공교롭게도 친구가 데려간 '침묵 독서회'는 수수께끼가 있는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고, 그 옆에 다른 그룹이 앉아 있는 소파를 보다가 한 여자의 무릎에 놓인 책을 발견했어요. 바로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였어요. 그녀에게 정중히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거든요." (40p)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다 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까요. 이상한 건 서점이나 출판사 직원들도 책의 존재를 모른다는 거예요. 분명 읽은 사람들은 존재하는데 책의 실체는 사라진 상태인 거죠. 신기한 건 <열대>를 읽은 사람들이 무슨 학파를 조직해서 <열대>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는 거예요. 그들도 끝까지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의 조각을 맞추는 중이에요. 과연 <열대>의 결말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건 모리미 도미히코가 <열대>를 무려 7년만에 완성했고, 데뷔 15주년 기념작이라는 거예요. 소설 내용처럼 슬럼프에 빠진 작가를 구원한 책이 <열대>라는 점이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책의 바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넘실대고 있어요. 중요한 건 나의 이야기예요.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저자는 <열대>라는 수수께끼의 책으로 그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엔 미로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보니 드넓은 바다였네요.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그건 펼쳐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어요. <열대>만의 비밀이자 매력인 것 같아요.
책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열대>라는 책
"세계의 중심에는 수수께끼가 있다."
마왕은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였다.
"그게 '마술의 원천'인 것이다." (396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