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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상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두 여자는 집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다... 이 문장에서 미심쩍거나 불편한 요소는 전혀 없어요.
그러나 한 문장을 덧붙이는 순간, 달라질 거예요.
열일곱 살과 열네 살 소녀가 부모의 허락 없이, 메모 한 장 써놓고 여행을 떠났다고요.
도대체 왜?
다들 이유가 궁금할 테지만 그냥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허무한 답변이 전부예요.
외동딸인 이츠카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부모님은 딸을 위해 미국 유학을 권했어요. 그래서 이츠카는 미국 뉴욕에 사는 고모네 집에서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고 있었죠. 과거형인 건 이츠카가 고모의 딸, 사촌동생 레이나와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에요. 처음 여행을 제안한 건 이츠카였고 레이나는 흔쾌히 동의했어요. 레이나는 TV 드라마나 영화나 책 속에서 일어나는 굉장한 일들을 좋아하는데 일상에선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츠카 언니랑과의 여행은 굉장한 모험이니까요.
처음엔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봤고, 그 다음엔 십대 아이들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여행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말이나 여행을 예찬하는 명언들보다 이 두 소녀의 여행이 더 많은 걸 느끼게 해줬어요.
광활한 미국 땅을 자동차도 없이 배낭여행한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츠카와 레이나는 용케도 그걸 해냈어요.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두 사람을 보면서 재차 확인했네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지만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미소짓게 만들었어요. 만약 혼자였다면 이 여행은 애초에 시작도 못한 채 한낱 꿈에 머물렀을 거예요.
그래서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넘치는 이츠카와 상냥하고 사교적인 레이나가 환상의 커플처럼 느껴졌어요. 이래서 여행의 동반자를 구하듯이 인생의 짝을 찾아야 하는가봐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할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그건 이츠카와 레이나의 비밀이라서 말할 수가 없네요.
두 사람은 여행 전에 규칙을 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여행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은 영원히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다는 건 그 비밀을 공유하는 일이에요.
제법 심장이 쫄깃한 순간도 있고, 잔잔한 감동도 있어요. 열네 살과 열일곱 살의 여행, 아니 모험이라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 인생에서는 절대 경험해볼 수 없는 순간들이니까요. 열일곱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는 주저없이 여행을 떠날 것 같아요. 어쩌면 나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데, 진짜로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 같아요.
집 떠난 뒤 맑음, 이상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