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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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토마스 예드로프스키의 데뷔작이라고 해요.

첫 작품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자전적인 내용을 포함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끔은 자신의 인생이 소설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누구든지 가능했다면 썼을 거예요. 소설 만큼 멋진 고백은 없으니까.

이 소설은 프롤로그의 한 문장으로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아요.


"나는 너를 생각한다."  (9p)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너'를 떠올리는 '나'에 관한 이야기예요. 

주인공 '나' 루드비크는 지난 날의 연인이었던 '너' 야누시에게 마음의 편지를 쓰듯이 말하고 있어요.

'나'는 지금 폴란드를 떠나 미국에 살고 있으며, 책꽂이에서《조반니의 방》을 꺼내어 그 해진 표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며 이 책장을 스쳤던 모든 손길을 생각하고 있어요.

'너'를 추억할 수 있는 이 한 권의 책은 해지고 바래졌지만 '너'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것처럼 '나'는 그 책에서 '너'를 발견했고, 쿵쿵대는 심장이 증명하듯이 '너'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있어요.

참으로 이상한 것 같아요.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는데, 그냥 그 마음이 느껴져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폴란드계 동성애자 작가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데뷔작이자 가장 놀라운 동시대의 퀴어 소설이라는 책 소개가 관심을 끄는 요인이었지만 대단한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나'에게 점점 빠져들면서 한 인간의 삶이 보였어요. 청춘, 젊음, 사랑, 야망, 자유, 용기...

사실 1980년대 사회주의 체제인 폴란드의 모습은 낯설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과거 그때의 선택은 옳았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주인공이 사랑했던 그 감정만큼은 진실했다는 것. 다시금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그 감정을 어떻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그 얼굴들은 하나 같이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다만 제목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 있을 뿐인 거죠. 

주인공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고통받는 건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몹시 따끔거렸어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일지라도 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그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은, 뜨거운 토스트 위에 놓인 버터처럼 스스르 녹아드는 감정이라 피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알 것 같아요.


내재한 공포와 욕망이 쌓아 올린 수치심이 묵직하고도 생생하게 실체화되었다. 

그날 밤 나는 어둠 속에서 베니에크 위쪽 침대에 누워 이 수치심을 뜯어보려 애썼다. 

그것은 새로 자라난 장기와 같아, 기괴하고도 펄떡이는 것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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