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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인류 모두의 적>은 17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해적왕 헨리 에브리에 관한 책이에요.
도대체 왜 헨리 에브리는 인류 모두의 적이 되었을까요.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한 남자, 그 해적의 범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저자는 해적 행위가 요즘의 테러 개념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실제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현대의 가장 극악한 연쇄 살인범보다 더 소름 끼칠 정도로 잔혹하다고 해요.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도시들은 소책자, 신문과 잡지, 책을 통해 해적들의 만행을 보도하고 알렸는데, 일부 작가들이 범죄자를 거의 영웅처럼 다루면서 돈벌이를 했다고 하네요. 18세기의 대중적인 출판물들이 해적들을 흉포하고 미치광이라는 평판과 함께 해적의 상표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해적의 황금시대가 출판문화의 탄생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절묘하네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해적들은 많았지만 굳이 헨리 에브리를 추적하는 이유는 단 하나의 사건 때문이에요. 1659년 인도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헨리 에브리가 공격했고, 그로 인해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되었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만약 헨리 에브리가 무슬림 황제 아우랑제브와의 폭력적 충돌을 피했다면, 영국의 인도 점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17세기 영국은 바버리 해적들을 인류 모두의 적으로 규탄했지만 위선적인 비난이었던 게, 극악무도한 해적들 중에는 영국 왕의 비호를 받기도 했대요. 공식적으로는 비난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적국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거죠.
그렇다면 헨리 에브리는 무명의 선원에서 어떻게 해적선의 선장이 되었을까요. 에브리는 찰스2세호에서 선상 반란을 일으켰고, 성공한 후에는 배의 이름을 팬시호로 바꿨어요. 그때부터 스페인 원정 해운과의 관계를 끝냈고, 팬시호는 해적선이 되었어요.
최근 역사학자들은 해적의 경제와 지배 구조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 있어요. 해적이 범죄와 탐험의 역사에서만 중요한 역할을 해낸 게 아니라 급진적 정치사에서도 선구자였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전해지는 자료에서 해적의 규칙을 기록한 로버츠의 합의 조항을 보면 해적들이 전리품을 분배하는 방식이 상당히 공평했음을 알 수 있어요. 로버츠의 합의 조항 첫 문장은 "중대한 사건을 결정할 때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다"라고 해요. 해적들이 민주적 원칙을 명문화했다는 점이 신기해요. 그 시대의 대부분 해적선이 채택한 선상에서의 권력 분립이 미국 헌법의 뼈대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헨리 에브리가 스페인 난파선 인양을 위해 출항했을 시기는 아우랑제브가 무굴제국의 황제가 된 지 30년을 넘긴 때였어요. 아우랑제브는 형제들의 피를 뿌리며 권좌에 올랐고, 통치 기간에도 엄격한 종교 생활을 강요하며 공격적인 군사 정복을 한 탓에 많은 피를 흘리게 한 파괴왕이었어요.
어떻게 에브리의 건스웨이호 약탈 사건이 역사의 결정적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우연의 연속이라기엔 톱니 바퀴가 맞물리듯이 거대한 변화로 이어지고 있어요. 어찌보면 헨리 에브리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수많은 요인들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어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역사의 빈틈은 상상으로 채워갈 수 밖에 없어요. 물론 해적 판타지가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그들의 만행을 정당화할 순 없을 거예요. 결국 해적왕 헨리 에브리는 인류 모두의 적이 됨으로써 역사에 남을 존재가 되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