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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라미 현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6월
평점 :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는 매우 특별한 사진들을 담아낸 책이에요.
저자 라미 현은 사진작가예요. 처음엔 Project-Soldier 기획으로 <대한민국 육군 군복>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참전용사의 사진을 찍은 것이 계기가 되어 Project-Soldier 네 번째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를 시작하게 되었대요.
2017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약 1,500여 명의 참전용사를 사진으로 기록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라고 해요. 한국전쟁 참전 및 지원국이 22개의 나라가 된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에요. 그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만 여겼지, 그 전쟁에 참전한 여러 나라의 군인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난 달 뉴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전에 미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쟁 참전용사에게 미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행사를 가졌다는 내용을 봤어요. 한-미 동맹을 강조하기 위한 행사로만 기억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사진과 함께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어요.
가장 인상적이며 뭉클한 대목이 있어요. 한국전쟁에서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은 윌리엄 빌 베버의 이야기예요. 그에게 촬영한 사진을 액자로 선물했더니 고맙다면서 자신이 뭘 해주면 되냐고 물었고,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선생님께서는 69년 전에 이미 다 지불하셨습니다.
저는 다만 그 빚을 조금 갚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나의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보통은 나를 꼭 안아주거나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정확히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You have so wrong idea."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선생님은 딱 잘라서 말했다.
"너희가 빚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있어. 바로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생긴 사람들에게 그 자유를 전하고 지켜주는 거야.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도 이 의무를 지키기 위함이지.
다만 너희도 자유를 얻었으니 의무가 생긴 거야. 북쪽에 있는 너희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것.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한다." (23-24p)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었던 비극적 사건이에요. 죽거나 다치거나, 그 어느쪽이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파괴되는 끔찍한 일이에요.
제가 어릴 때는 한국전쟁에 대해 배우면서 반공교육을 엄청 받았던 기억이 나요. 똘이 장군이 북한의 요괴를 때려잡는 만화를 보여주던 때라서 아이들에게 북한은 무찔러야 적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남과 북의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그들도 똑같은 동포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어요. 다만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분들과 참전용사들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했으므로 우리의 영웅들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윌리엄 빌 베버의 말처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거예요. 결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자유뿐만이 아니라 평화라는 것을 되새기게 되네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담아낸 사진 에세이를 통해서 전쟁의 비극과 참전용사들의 인생을 기억하게 되었어요.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