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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반야심경 1
혜범 지음 / 문학세계사 / 2021년 5월
평점 :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때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면 알아요.
아프면 현실이고, 무감각하면 꿈인 걸.
산다는 것도 똑같은 것 같아요. 어쩌면 매번 고통 속에서 살아있음을 깨닫게 되는지... 모진 운명인 거죠.
그래서 부처님은 삶을 고행이라고 하셨나봐요. 불교신자가 아닌데도 붓다의 가르침은 찰떡 같이 이해가 돼요.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으로 살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어요. 삶의 고뇌는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인 삶의 조건이구나.
다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하느냐고... 억울할 것 없는 것이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나도 그런 거였어요.
다만 그걸 모르면 진흙탕 같은 삶인 것이고, 깨달으면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 같은 삶이 되는 것이겠지요.
<소설 반야심경>은 혜범 스님이 쓴 소설책이에요.
그동안 스님이 쓴 에세이나 명상집은 읽어봤지만 소설은 처음인 것 같아요.
혜범 스님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수차례 수술을 하면서 몸이 껍데기라는 걸 알았다고 해요. 병상에 누워 고통스러운 가운데 이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니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고통은 허구가 아닌 실재였어요.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중에 우리는 이미 두 가지를 경험해봤으니 소설은 어느새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요.
주인공 선재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반야, 즉 지혜를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기구한 운명이라 여겼는데,
여덟 살 강선재는 양명원에서 살게 됐어요. 양명원은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 수용 지역이에요. 양명원 陽命院 의 전 이름은 무명원 無明院 이었어요.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무명 無明 이라 했던가. 어차피 가야할 길이 칼날 위였던가, 어둠이었던가.
세상에 대해 무지한 것, 무자각한 걸 불각 不覺 이라 했던가." (112p)
엄마는 중방이라는 곳, 아빠는 상방이라는 곳으로 이송 격리되었어요.
먼저 전염된 건 아버지였어요.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는데, 어느 날 외할아버지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에게 잡혀가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직당했어요.
그리고 보름 후 가족들은 벽이 온통 흰 곳으로 격리 수용되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는 눈썹이 빠지고 피부의 근육들이 문드러지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나병 환자가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전염된 보균자였어요. 처음엔 아무 증상이 없었는데, 나병의 잠복기는 짧으면 보름, 길면 5년, 20년 가량 지속된다고 했어요.
선재는 나환자의 아들, 미감아였어요. 식구들 중 말짱한 건 선재뿐이었어요. 미감아 수용 시설 자혜원으로 이감된 선재는 자신보다 세 살 많은 종숙이 누나 때문에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고, 결국 부모님과 떨어져서 절로 가게 되었어요. 아빠의 친동생이 스님이라서, 그 삼촌 스님에게 선재를 부탁한 거예요. 지효라는 법명의 삼촌은 선재를 현계산 관음사 노스님에게 데려갔어요. 지월 노스님은 사흘 동안 방 안에서 꿈쩍도 않는 선재를 지팡이로 쑤셔대더니 여기서 잘 지내면 열여덜 살에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마 약속했어요. 그러면서 선재에게 바다로 가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노스님은 선재의 법명을 해인 海印 이라 정해줬어요. 바다에 도장을 찍는다는 뜻으로 우주의 일체를 깨달아 아는 부처님의 큰 지혜라고요.
"바다로 가야지."
"바다요? 바다는 왜요?"
"이 세상이 바다니까."
"하필이면 왜 바다예요?"
"바다는 살아 아우성치니까."
"......" (146p)
6학년, 열네 살이 된 선재에게 삼촌 스님이 찾아왔고, 새 호적을 만들어줬어요. 이제부터 강선재가 아니라 김산이라는 이름으로 내일부터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어요.
며칠 뒤, 해인은 어머니에게 편지가 오지 않아 친구에게 편지를 썼는데 답장에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석 달 후에 엄마까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적혀 있었어요. 방황하는 해인을 붙잡아 준 건 지월 노스님이었어요.
세월이 흘러 해인 스님은 현재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어요. 이 모든 이야기는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해인의 현재와 정신적 고통을 겪는 해인의 과거가 맞물려 있어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통에 몸부림칠수록 해인은 노스님의 말씀과 함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멀리 있지 않았어요. "바다로 가야지."라고 했던 그 말씀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