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첫 장면부터 몰입했던 건 염 여사가 처한 상황을 비슷하게 겪어봤기 때문이에요.

전철에서 내려야 할 역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닫히기 직전에 내렸는데 '아참, 휴대폰 어디갔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염 여사가 잃어버린 건 휴대폰이 아니라 지갑, 통장, 수첩 등 귀중품이 든 파우치였으니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요. 다행인 건 그녀의 휴대폰으로 파우치를 주운 사람이 전화를 해왔다는 것이고, 찝찝한 건 그 사람이 서울역의 노숙자였다는 거예요. 그러나 직접 만난 그는 염 여사의 분홍 파우치를 지키려고 다른 노숙자들과 싸울 정도로 꽤 괜찮은 사람이었고, 곰 같은 체격에 어눌한 말투를 가진 남자였어요. 그가 원한 건 편의점 도시락 하나뿐인데, 먹던 도중에 노숙자들과 실랑이를 하느라 도시락이 쏟아졌고, 이에 염 여사는 그를 데리고 청파동의 작은 삼거리 모퉁이에 자리한 편의점에 들어갔어요.

그곳은 바로 염 여사가 운영하는 편의점이거든요. 새로 도시락을 건네주자 남자는 밖으로 나와 맛있게 먹었고, 측은한 마음이 든 염 여사는 언제든지 배고플 때 와도 좋다고 했어요. 며칠 뒤 알바 시현이 그 남자가 매일 와서 도시락을 먹는데, 꼭 폐기 시간에 맞춰 폐기 도시락만 먹는다는 거예요. 염 여사의 말처럼 그는 정말 '경우 있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주변에는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경우 없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사업한다고 다 말아먹고, 편의점까지 처분해서 사업 밑천을 대달라는 염 여사의 아들처럼 말이죠.

앗, 설마 했는데 위험에 빠진 염 여사를 독고 씨가 달려와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야간 알바로 들어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져요. 독고 씨는 그 노숙자를 부르는 말인데, 진짜 이름은 본인도 모른다고 하니 참으로 미스터리한 인물이에요. 

중요한 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고 씨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거라는 거죠. 살면서 독고 씨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그로 인해 편의점에 불어온 바람은 알 것 같아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해와 바람의 내기처럼 독고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묵묵히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있어요. 그 마음에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건 제이에스예요. 진상.

편의점의 진상 손님은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데 여기 등장한 제이에스는 치졸함의 극치였던 것 같아요. 뭐, 이미 제이에스로 분류했다는 것만으로도 알짜지만 말이에요. 놀라운 건 독고 씨가 그 지긋지긋했던 제이에스를 제대로 방어해냈다는 거예요. 말더듬 때문에 사회 능력을 살짝 의심했는데 의외의 능력을 가졌더라고요. 극강의 방어력이랄까. 마치 축구에서 펼치는 압박과 방어전술 같은 빠른 대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에요. 볼매, 보면 볼수록 매력덩어리인 독고 씨가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가 아닌가 싶었어요. 하늘이 아니라 서울역에서 왔지만 천사가 확실한 것 같아요. 

뜬금없지만 독고 씨의 선한 영향력이 희수 샘이 해준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져서 옮겨봤어요.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140p)


편의점 손님이자 시한부 작가 생활 중인 인경에게 살갑게 대해준 희수 샘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또다른 천사라고 할 수 있어요. 아마 독고 씨 같은 파격적인 천사는 다신 없을 것 같아요. 정말 소설이 아니라 다큐였다면 당장이라도 독고 씨가 있는 편의점에 찾아가고 싶을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은 옥수수수염차로 달래야 할까봐요. 아참, 독고 씨의 미스터리는 <불편한 편의점>에 오시면 풀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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