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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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손에 닿지 않는 선반을 바라만 보다가, 발디딜 디딤돌을 찾은 느낌이랄까. 그 디딤돌 대문에 올라서야 할 것 같고, 선반 위의 물건을 꺼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 것 같아요.

매우 점잖은 책표지에, '이것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라고 강조했더라면 망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웬걸, 마치 휴가를 온 듯한 상큼발랄한 두 여성의 모습이라니... 낚인 건가요. 분명 두 눈으로 확인했어요. 이 작품의 저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걸.

세상에 현대 작가의 이름 중 동명이인이 있는 건 아닐테고, 당연히 그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작품이렷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이후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근래 영화나 드라마 대본집을 읽은 적은 있지만 고전 희극 작품을 읽는 건 뭔가 색다른 것 같아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크게 서막과 본극으로 나뉘어 있어요.

서막은 영국이 배경이라서 영국식 지명과 인명으로 표기되어 있고, 본극은 이탈리아가 배경이라 이탈리아식 지명과 인명으로 표기되어 있어요.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아요. 서막의 첫 장면이에요. 어느 마을의 술집 앞에 빈털터리 주정뱅이 크리스토퍼 슬라이가 술집 여주인에게 내쫓기고 있어요. 슬라이는 비틀거리다 바닥에 드러누웠어요. 그 길을 지나던 영주가 슬라이를 발견했고, 사냥꾼들을 시켜 숨은 쉬는지 확인해보라고 했어요. 영주는 슬라이를 욕하면서 술주정뱅이를 골려줄 계획을 세웠어요. 슬라이를 깨끗하게 씻겨 성으로 옮긴 후 그를 영주인 것처럼 속이라는 거예요. 슬라이가 정신나간 영주인데 꿈에서 깬 것처럼 하인들과 짜고 연기하도록 시켰어요. 실제 배우들까지 섭외해서 가짜 영주가 된 슬라이를 위해 유쾌한 희극을 보여주는데, 그 희극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거예요.

우리는 슬라이와 함께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희극을 보는 거죠.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내용은 이탈리아 파도바의 갑부 밥티스타 미놀라에게 아름다운 두 딸이 있는데, 첫째가 말괄량이 카타리나이고 둘째가 얌전한 비앙카예요. 

유명한 거상 벤티볼리 가문 빈체티오의 아들인 루첸티오가 하인 트라니오를 데리고 파도바에 여행왔다가 밥티스타의 딸 비앙카에게 반했어요. 루첸티오는 비앙카에게 청혼하고 싶은데, 밥티스타는 첫째 딸 캐서린이 혼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네요. 대신 비앙카를 위한 가정 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루첸티오는 가정 교사 캄비오로 변장하고, 하인 트라니오를 루첸티오로 변장시켰어요. 이때 페트루키오라는 남자가 돈 많은 여자라면 말괄량이도 상관 없다면서 자신이 그녀를 길들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어요.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밥티스타가 사윗감을 재력으로만 결정했다는 거예요. 처음 본 페트루키오가 자신을 재력가라고 소개하며 카타리나에게 청혼하자 아버지가 승낙했고, 카타리나에겐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어요. 무례하고 괴팍한 페트루키오는 카타리나를 굶기고 괴롭히는 행동을 통해 아내를 길들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편 가정 교사로 위장한 루첸티오는 비앙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재미있는 건 이 모든 건 사기극이라는 거예요. 

남자들 입장에선 사랑으로 포장된 욕망일 뿐이고, 여자들 입장에선 사기극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어요. 밥티스타는 자신의 딸을 재산처럼 취급했어요. 솔직히 현대적인 관점에서 남성들의 태도가 몹시 불쾌할 수 있는데, 당시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풍자극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잊지 말아야 할 건 서막의 주인공 슬라이가 즐기고 있는 희극 무대라는 거예요. 슬라이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연극을 보며 웃고 있겠죠? 

누가 누굴 속이는 것이며, 무엇이 꿈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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