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도 우릴 판단할 수 없어." 실카가 이를 악물고 말한다.
"너는 그게 어떤 건지 몰라. 우리에겐 둘 중 하나밖에 없었어.

살아남거나 죽거나."  (146p)


<실카의 여행>은 열여섯 살 소녀 실카의 비극적인 인생 여정을 다룬 소설이에요.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것 같아요. 도저히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라 소설을 읽는 내내 힘들었어요. 주인공 실카는 겨우 열여섯 나이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 갇혔고, 강간과 인권유린을 당했어요. 그런데 독일군을 소탕하러 온 소련군은 실카를 나치군에게 몸을 팔아서 살아남은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15년 노역형을 내렸어요. 3년을 지옥 같은 강제수용소에서 견뎠는데, 다시 시베리아 보르쿠타 굴리크 감옥으로 보내졌어요.

열여섯 소녀, 아직 여자라고 하기엔 어린애일 뿐인데 그 아이가 강간을 당하면서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실카를 창녀 취급했고 나치의 공모자라고 주장했어요. 그저 살기위해 버텨낸 것이 죄라는 건가요.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실카는 약자일 뿐이에요. 살아남은 죄, 오직 그 이유로 열여덟 살의 실카는 15년 감옥살이를 하게 돼요.

시베리아 보르쿠타 굴라크 감옥 역시 지옥이었어요. 가장 참기 힘든 건 똑같은 죄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행동과 범죄인 것 같아요. 생존을 위해 짐승보다 못한 인간으로 변하는 괴물들... 여자수용소에 들어와 성폭행을 저지르는 남자죄수들, 죄수들을 괴롭히는 간수들, 그 간수들 위에 군림하는 상관들... 그 가운데 실카를 협박했던 한나를 잊을 수가 없어요. 한나는 자신은 나치에 맞서 싸우다가 붙잡혔으니, 실카와는 다르다고 여겼고, 실카의 과거를 빌미로 필요한 것들을 빼앗았어요. 한나와 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는 게 현실의 비극인 것 같아요. 선량한 척, 정의로운 척하지만 위선과 가식으로 약자를 노리는 하이에나.

그곳에서도 실카는 묵묵히 참아냈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친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안타깝게도 실카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모든 걸 희생하는 삶을 선택했어요. 그건 살아남았지만 살았다고 볼 수 없어요. 그토록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았으면서, 왜 실카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은 걸까요. 

실카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실카를 기억할 거예요. 그녀가 얼마나 영웅 같았는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그녀의 용기와 선행은 수많은 이들을 살렸어요. 

아무도 그녀의 과거를 비난할 수 없어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열여덟 소녀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은 그 누구도 없어요. 전쟁의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몰상식한 자들은 누구인가요. 문득 일본군 위안부를 창녀 취급한 자들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오르네요. 우리가 무찔러야 할 적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해요. 정확하게는 그들 내면에 도사린 악한 본성이 전쟁을 일으키고, 현실을 지옥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카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속에서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보여줬어요. <실카의 여행>은 한송이 연꽃처럼 치열하게 아름다웠던 한 인간의 삶을 담아낸, 역대급 감동 실화네요. 저자는 노신사 랄레로부터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듣게 되었고, 이 소설은 랄레가 수용소에서 자신을 구해준 세실리아 클라인이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여성이 아우슈비츠 이후에 겪은 실제 이야기를 썼다고 해요. 실카, 당신을 떠올리며 이 말을 전하고 싶네요.

"라이히 르샬롬 (평화가 있기를)." (360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