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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봄비가 내렸어요. 따스했던 봄볕이 어디로 갔는지 숨어 버렸네요.
유난히 서글픔에 젖어드는 봄비, 낙화한 목련이 어쩜 이리도 그미를 닮았을까요.
<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에요.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350p)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시대가 외면했던 불우한 천재의 삶.
조선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어쩔 수 없는 혼인으로, 감옥에 갇힌 듯 살아야 했던 그녀는 허초희, 난설헌이라는 이름 석 자마저 지워야 했어요.
이름이 사라진 여인,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초희가 혼인한 뒤에는 '그미'라고 지칭하고 있어요.
우리가 <난설헌>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예요. 허난설헌을 기억하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면서 훌륭한 위인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여성을 찾기는 쉽지 않아요. 분명 존재했을 뛰어난 인물들이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건 너무도 불행한 일이에요.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으니까요. 허난설헌은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아름답고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어요. 원래 허난설헌의 작품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임종 때 그녀의 유언대로 모두 소각됐다고 전해져요. 동생 허균이 친정에 보관되어 있던 허난설헌의 작품들을 명나라 시인에게 주었고, 그녀가 별세한 후 18년 뒤에 최초로 중국에서 간행되어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하네요. 조선은 위대한 천재 시인을 외면했으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 뛰어난 작품들에 매료되어 명성이 자자했다고 하니 기쁘면서도 슬프네요. 그미는 세상을 떠났지만 난설헌시집은 시대의 명작으로 남았네요.
안타까운 건 시인 난설헌이 아닌 인간 난설헌의 삶이에요. 이 소설은 오직 한 인간으로서, 허초희가 어떻게 잔혹한 운명을 헤쳐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어리석고 못난 남편 김성립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나네요. 애초에 잘못된 만남인 것을, 만약 막을 수 있었더라면... 부질없는 상상이건만 속앓이를 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누구라도 초희의 마음을 알아주고, 영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김성립의 아내가 된 이후 붓 하나 드는 것조차 눈총을 받아야 했으니, 두 손 두 발이 다 묶여버린 신세였던 거죠. 당시에 느꼈을 고통과 번민을 전부 작품으로 쏟아낼 수 있었다면 그토록 일찍 생을 놓아버리진 않았을 텐데, 그 부분이 가장 속상하고 슬펐어요. 자신의 마음 둘 곳 없는 세상이란...
그미의 얼굴을 보며 균이 말했다.
"누님, 너무 많이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곤두박질친답니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생이 아닐까 싶어요.
물처럼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면, 바다에 이른다지 않아요."
"바다에 이르면, 그곳이 영생불멸하는 근원이라 함인가, 나는 모르겠네." (254p)
<난설헌>을 읽고나니 삼월에 내리는 봄비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봄비 내리는 날, 아직 못 다 핀 꽃잎 떨어지며 흐르는 눈물처럼 흘러흘러 바다에 이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