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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나무
아야세 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괴물은 괴물이야. 여자는 크고 아름답고, 사나워서 마음을 빼앗기지.
하지만 변이하면 다른 생물이 돼."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이잖아. (146p)
<치자나무>는 아야세 마루의 단편집이에요.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일곱 가지 은유.
그 은유가 얼마나 독특하고 기괴하던지, 잠시 당황했어요. 그러나 곧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랑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아야세 마루의 소설처럼 저런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사랑에 미쳐버리면 사람은 달라지니까. 더군다나 그 사랑을 끝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는 자신도 몰랐던 본성이 드러날지도 몰라요.
<치자나무>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내연녀가 등장해요. 사랑 때문에 추하고, 비열해지는 건 모두 그 몸속에 나쁜 생물이 숨어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요. 만약 몸속에 숨어든 그 추하고, 약하고, 비열한 생물을 끄집어내어 없앨 수만 있다면 사랑은 달라질까요. 글쎄요, 너무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요.
치자나무는 치자꽃 향기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사시사철 푸른 잎으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예요. 치자꽃의 꽃말은 한없는 즐거움과 그리움, 순결, 행복이라고 해요.
바로 그 치자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 안에 넣었다는 그것, 치자꽃 무덤이라니 기막힌 결말이에요.
<꽃벌레>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운명의 꽃이 한낱 기생충이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그러나 속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거짓된 상태였어도 사랑했다는 거예요. 진정한, 거짓된, 진정한, 거짓된...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건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우리에겐 거짓된 세상보다 사랑 없는 세상이 더 견디기 힘든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랑의 스커트>는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슬픈 법이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란 너무도 괴로울 거예요. 더욱 안타까운 건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다는 거예요. 닿을 수 없는 것을 좋아하는 그 사람의 선택은, 좋아하는 것에 닿지 않고도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거예요.
<짐승들>은 여자와 남자의 세계를 극단적인 세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낮과 밤, 괴물로 변하는 여자들과 그 괴물을 잡아죽이는 남자들.
남자는 낮의 세계에 속해 있고, 여자는 밤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번식기가 되면 짝짓기를 하듯 여자와 남자가 만나 결혼하고 함께 살지만 낮과 밤이 나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자와 남자는 딱 반쪽 세상만 살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세상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괴로워, 괴로워가 사랑해, 사랑해로 겹쳐지는 참으로 알쏭달쏭한 난제인 것 같아요.
<얇은 천>은 우울한 주부가 이민자 소년에게 빠져들어 위험한 인형 놀이를 하는 이야기예요.
남을 이용해 쾌감을 얻는 인형 놀이라니,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인간이 다른 누군가의 인형 노릇을 한다는 건.
진짜 비극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랑하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것만 즐기는 삶이란 공허하고 부질없게 느껴지네요. 어딘가 마비된 것 같아요.
<가지와 여주>는 혼자 살게 된 오십대 여성의 이야기예요. 30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동승했던 외도 상대와 함께 숨진 게 석 달 전이에요.
장례식을 마치고 같이 있던 두 딸은 각자 가정으로 돌아갔고, 집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불현듯 시청으로 가서 혼인 관계를 끝내는 소속을 밟았어요. 채소를 싫어하는 남편과 딸들 때문에 어느샌가 같은 채소를 사서 같은 요리를 하는 습관이 들었는데, 지금은 뭐든 좋아하는 재료를 사서 마음대로 요리하면 돼요. 울퉁불퉁 못생긴 여주를 맛있게 요리할 줄 아는 그녀, 어쩌면 앞으로의 삶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물론 이래나 저래나 사람은 바뀌지 않겠지만.
<산의 동창회>는 종족보존을 위해 알을 낳는 여자들의 이야기예요. 세 번의 산란을 끝낸 여자는 대부분 기운이 다해서 숨이 끊어진다고 해요. 주인공 니우라는 아직 한 번도 알을 낳지 않았어요. 이번 동창회에 가기로 한 건 동창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여자친구들이 벌써 세 번째 임신을 맞이해 알을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곧 그 친구들과 작별할 마지막 기회라는 거죠. 니우라는 산란 이후 죽는 삶 대신 그들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삶을 선택했어요. 이른바 죽음의 책들.
처음엔 기괴하게만 느껴졌는데 읽다보니 작가의 상상력이야말로 사랑과 관계를 가장 선명하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색다른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