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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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알게 되었어요.

제대로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찜해뒀는데 드디어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인 『시학』을 읽게 되었어요.

굉장히 두꺼운 책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얇아서 놀랐어요. 

이 책은 원전 번역뿐만이 아니라 본문 각주가 충실하게 달려 있어서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어요. 

『시학』은 원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해요. 1권은 비극과 서사시를, 2권은 희극을 다루었는데, 지금은 1권만 전해진다고 하네요. 현재 『시학』은 26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이 책은 그 내용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원래부터 장 구분이 있던 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에 그리스어 판본을 편집하면서 26장으로 정리된 것이라고 해요.


시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시"로 번역한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만들어낸 것', 즉 창작물이며 시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해요. 

책 제목도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창작물에 관하여'이기 때문에『시학』으로 표현했다고 하네요. 당시의 "시"라는 용어는 서정시나 서사시 등 시뿐만이 아니라 비극이나 희극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창작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창작물)에 대하여, 모방을 통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예술은 모두 리듬과 언어와 선율이라는 수단을 개별적으로 사용하거나 서로 조합해 모방하며, 누군가 의술이나 자연철학에 관해 글을 썼다고 해도 운문으로 썼다면 그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행이라는 거예요. 서사시와 비극, 희극과 디티람보스(고대 그리스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합창으로 신화에 나오는 내용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했음), 송가(그리스의 신들을 찬미하는 노래)는 모두 똑같이 모방 수단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지 모방 수단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모방"으로 번역한 그리스어는 '미메시스'예요. 미메시스가 '모방'과 '표현' 중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를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미메시스는 모방에 더 가까워 보이며, "모방극"(그리스어로는 미모스)은 일상생활의 이런저런 일이나 신과 영웅들의 에피소드를 촌극 형태로 표현한 조잡한 광대극을 뜻해요.

비극은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며, 행위는 행위자가 행하는 것이므로, 행위자는 자신의 성격과 사상에 따라 특정한 성질을 지닐 수 밖에 없어요. 따라서 플롯은 행위의 모방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비극의 특성을 결정하는 여섯 가지 구성요소는 플롯, 성격, 대사, 사상, 시각적 요소, 노래가 있어요.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행위나 사건을 구성하는 플롯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단순히 '뮈토스'(이야기)라고 말하거나 '이야기나 사건들의 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플롯은 여러 사건을 엮어 짜서 구성하는 것이고, 플롯의 결과물을 이야기(story)나 줄거리(storyline)라고 할 수 있지만 차이점은 있어요. 플롯이 사건의 구성이나 짜임새를 강조한다면, 이야기나 줄거리는 여러 사건이 이어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요. 훌륭한 플롯은 결말이 단일해야 해요. 그것은 결말이 이중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단일한 결말이란 주인공의 운명만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도록 설정하는 결말이고, 이중적 결말이란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고, 그와 대비되는 다른 한 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도록 설정하는 결말이에요. 시학 이론에 따르면,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 플롯은 『오디세이아』처럼 이중적 플롯을 전개해 나가다가 고귀한 등장인물과 악한 등장인물이 서로 정반대의 결말을 맞는 플롯이라고 해요.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관객이 원하는 대로 시인이 작품을 쓰기 때문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모든 점에서 서사시보다 우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어요. 또한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단언하고 있어요.


"역사가와 시인의 진정한 차이는,

역사가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고 

시인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한다는 데 있다." (35p)


왜 그럴까요. 이 부분은 옮긴이의 해제를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인 미덕에서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겼어요. 비극은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데, 이때 유명한 "카타르시스" (정화)라는 용어가 등장해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카타르시스는 적절한 분량의 감정, 즉 이성과 미덕에 부합하는 감정을 지니게 한다는 의미라고 해요. 사람이 모든 감정을 미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경험한다면, 거기에는 즐거움만 있고 고통은 수반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비극을 보면서 공포와 연민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오직 즐거움만 느꼈다면 그 비극이야말로 제대로 된 비극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는 비극의 고유한 목표는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즐거움을 주는 것이에요. 비극은 그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미덕과 행복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결국 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미학적이라기보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이며, 당시 그리스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비극과 서사시를 하나의 철학으로 끌어올렸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감정을 폄하한 플라톤보다는 감정을 중요하게 여겼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한 표를 보내요.

현대의 비극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동시에 철학이 추구하는 진리와 선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시학』의 진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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