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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내 뼈 - 난생처음 들여다보는 내 몸의 사생활
황신언 지음, 진실희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2월
평점 :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관련 정보는 열심히 찾아보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일에는 둔감했더라고요.
몸, 내 몸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거나 바뀔 리가 없다보니 당연한 듯 무심하게 내버려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내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어요.
뭐니뭐니해도 내 몸을 알아야,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몸 내 뼈>는 현직 의사가 들려주는 몸에 관한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엔 몸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의학적인 정보만 담겨 있는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있더라고요.
저자는 전문의가 되기 전 의대생 시절부터 인턴, 레지던트, 치프 레지던트의 단계마다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고 있어요. 왠지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은근 재미있었어요.
우선 얼굴 이야기부터 급격한 호감을 느꼈어요. '난 내가 좀 사나웠으면 좋겠어!'라고 부르짖는 저자의 심정을 백분 이해할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할 때 착해 보이는 인상이나 어려 보이는 동안은 타인에게 만만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단점이에요. 하물며 저자는 환자를 진찰해야 하는데 노인환자들에게 젊은 의사는 영 미덥지 않은 초보 의사로 보일 수밖에요. 어떤 환자는 대놓고 '선생님보다 높은 의사 선생님께 여쭤봐라, 그쪽은 너무 어려 보인다'라며 무례하게 굴었다고 하네요.
다음은 심장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의과대학 시절에 심장내과를 실습하면서 전문의 선생님이 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해요. 2주간 심장내과 실습을 하며 많을 걸 배울 수는 없지만 반드시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심근경색이라고요. 사람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라고요. 심근경색 환자들은 대부분 가슴 답답함과 흉통을 호소하며, "심장이 아파요'라고 말하기보다 "가슴이 아파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해요. 흉통의 원인은 심장뿐만이 아니라 폐, 식도, 뼈, 근육, 신경 어디 한 군데에 문제가 생겨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의대생들은 치명적인 흉통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네요. 진짜 심장이 아픈 사람도 그저 가슴이 아프다고 말할 뿐 심장이 아프다고 호소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심장이 꿋꿋하게 마지막까지 참아내는 침묵의 장기라는 뜻일 거예요. 가슴 한 켠에서 두근두근, 오늘도 쉴 새 없이 뛰고 있는 내 심장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항문 이야기는 읽다가 민망함에 몸서리를 쳤어요. 환자 입장에서만 곤란하다고 느꼈는데 진찰하는 의사 역시 똑같이 힘든 과정이란 걸 알게 됐네요. 모두를 민망하게 만드는 항문 검사, 잠깐! 상상은 금물, 유경험자라면 더더욱 괴로울 수 있어요. 저자는 손가락을 뻗어 수지검사를 시행하면서 오직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폴립인지 종양인지, 아니면 뒤쪽으로 쏠린 자궁인지를 판단하느라 무척 긴장했다고 해요. 또한 회음부를 예리하지 않은 물건으로 긁어 괄약근의 수축 상태를 관찰하는 항문 반사라는 검사도 있다는데, 이 검사는 수지검사보다도 민망한 극강의 검사라고 하네요. 사실 아프지 않다면 이러한 검사들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동안 병원이나 의사에 관한 부정적인 선입견은 '아프다'라는 통증과 연계된 자동반사였던 것 같아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의사 선생님의 속내를 듣다보니 새삼 그 노고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의사로서 대상이 되는 '몸'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주체인 자신의 몸 이야기를 솔직히 들려줬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내 몸의 사생활을 드러낸다는 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아무튼 항문은 문이다. 문은 도망칠 곳과 숨을 곳을 제공하고, 차단, 방어, 사적인 영역의 권리를 은유하며,
'여기부터는 우리 집이니 구경을 사절합니다'라는 의사를 드러낸다.
우리는 문 안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영원히 알 수 없다. 항문 안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문을 기점으로 깊이 숨어 버린다.
병변도, 취향도, 냄새나는 무엇도 그리고 마약도 .... 항문은 언제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집안의 추악한 모습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다. (28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