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세상을 떠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어요. 그러나 잔인하게도 현실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 이후 일 년여간 쓴 편지를 모아 엮어낸 책이에요.
첫 장에는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의 장례식에서 낭독했던 추도문이 실려 있어요.
추도문은 장례식에서 고인을 기리기 위한 공식적인 글인데,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에게 보내는 편지로 대신했어요.
그리고 장례식 날부터 계속해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허공에다 외치는 외롭고 절절한 고백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이 편지는 온전히 너를 향한 것, 우리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자
너에게 말을 거는 나의 방식이니까.
듣지도 답하지도 않을 너에게." (17p)
문득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가 떠올랐어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2년여간 기록한 내용인데, 이 책 덕분에 저마다 자신만 아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픔,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니까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나봐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강해지는 줄 알았던 거죠.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피에르 베르제가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썼는지 알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연인의 빈 자리가 믿기지 않아서 자꾸 확인하듯 그에게 말을 걸고 있어요. 두 사람만의 애틋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가끔 안 좋았던 일들은 툴툴대면서도 그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다는 게 느껴져요. 사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사랑했다니, 진심으로 사랑했네요. 술, 마약, 기타 등등 불행한 일들이 둘의 관계를 위기로 몰고 갔던 것 같아요. 하지만 피에르 베르제는 떠나지 않았고, 이브 생 로랑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었고, 그의 두 눈을 감겨주었어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피에르 베르제가 누구인지 잘 몰랐어요. 이브 생 로랑의 명성은 들어봤지만 그의 연인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스물일곱 살의 피에르 베르제가 스물한 살의 이브 생 로랑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이후 평생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사랑하는 연인으로 함께 했다고 해요. 두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성지향성을 숨기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연인 관계를 인정했으며 성소수자를 위한 입법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네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사랑하며 함께 지내온 세월이 50년이라는 거예요.
자그마치 50년.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어요. 그러니 남겨진 자의 슬픔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크기일 거예요.
피에르 베르제의 편지는 오직 이브 생 로랑을 위한 것이지만 그 편지를 읽는 동안 슬픔 못지 않은 사랑을 느꼈어요.
우리는 사랑한 시간만큼 이별할 때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애도의 시간은 삶을 지탱하기 위한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마음 안에 담아둬야 외롭고 쓸쓸할 때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였어요. 오직 사랑뿐.
2009년 8월 14일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내가 살아온 그대로 다시 살고 싶다.
나는 과거를 불평하지도,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몽테뉴 『수상록』의 글귀야.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을까? 전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내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저 문장이야. (14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