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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
장재준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평점 :
<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를 읽기 전까지는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제게 라틴아메리카는 미지의 세계이기 전에 관심 밖의 세계였다는 걸 깨닫는 계기였어요.
저자는 '자연으로부터 축복 받은 라틴아메리카는 왜 역사로부터 저주를 받았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우선 미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멕시코 이야기부터 꺼내보면 미-멕 국경지대의 사막 지역이 거대한 공동묘지로 바뀌고 있다고 해요.
티후아나와 샌디에고 사이에 설치된 국경 장벽에 관들이 매달려 있는데, 미국으로 넘어가려다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수와 해당 년도가 관 뚜껑에 비문처럼 적혀 있다고 하네요. 트럼프의 보호주의 때문에 국경에 거대한 장벽이 더욱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어요. 미국과 접하고 있는 멕시크 북부 경계지대는 이미 거대한 전염병 번식장으로 둔갑했고, 절대 다수의 경계인들은 취약한 환경에 내몰렸어요. 국경의 덫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 이들 경계인들은 그야말로 국가의 바깥에 버려진 상태예요. 대략 80~90%가 마약중독자인 데다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구걸, 단순 일용직, 소매치기, 강도, 마약 밀매 등 각종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고 하니 지옥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라틴아메리카에는 일제 시대에 이주했던 한인들의 역사가 흐르고 있어요.
민족 수난사를 작품으로 그려낸 주요섭은 1930년, 동아일보에 「구름을 잡으려고」라는 미국 이민 1세대의 탈 멕시코 정착기를 연재했다고 하네요. 이 소설에는 팔리지 않고도 팔려온 종처럼 살아가던 멕시코 애니깽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어요. 1905년에 제물포항을 출발해서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20여 개의 에네껜 농장으로 팔려나갔던 한인 1,033명과 그 2세들이 쿠바 애니깽의 조상들이라고 해요. 쿠바 한인들의 역사를 전혀 몰랐다가 최근 다큐영화 <헤로니모>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쿠바는 쿠바 혁명, 체 게바라로 기억되는 나라였는데, 쿠바 혁명 이후에 실질적으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음악의 생산 시스템, 소비 방식, 유통 구조, 교육 체계였다고 해요. 다채로운 음악 장르가 혁명 이후 쿠바 사회의 실질적인 사운드 트랙 구실을 했어요. 라틴아메리카를 강타했던 K 팝, K 드라마, K 뷰티 돌풍의 진원지 중 한 곳이 쿠바였대요. 자본주의 음반 산업은 낙후되었지만 음악이 빈곤하지는 않았던 건 음악에 관한 한 쿠바는 대체불가능한 호모 뮤지쿠스의 땅이기 때문이에요. 쿠바인들에게는 니체의 말대로 '춤추지 않고 보낸 하루는 삶 없이 보낸 하루에 불과하다' (107p)라고 하니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너무나도 적나라한 고통이 생생하게 표현된 자화상이라 섬뜩한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알고 나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여기에 소개된 멕시코 혁명의 여성 참전용사 아멜리아 로블레스 대령을 보면 멕시코의 여성사를 짐작할 수 있어요. 아멜리아는 여성 혁명군으로 남장한 채 싸웠고 아멜리아가 아니라 아멜리오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욕과 혐오와 차별의 삶을 살았고, 무훈을 공인받지 못했으며 등록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 소수자의 수모를 겪었다고 해요. 여성 혁명군 중 아델리타도 근래에 무훈을 공적으로 재평가 받았어요. 멕시코 혁명이 발발한 지 10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델리타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가난, 차별, 배체, 억압, 폭력이 끊이지 않기에 아델리타스의 인정투쟁은 대를 이어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네요.
마야와 아스테카 문명권은 물론이고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를 비롯한 메소아메리카 일대에서는 카카오 원두가 화폐로 통용되었다고 해요. 카카오 콩을 눈알처럼 귀하게 여기던 마야시대로부터 수천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초콜릿은 사치품이에요. 적어도 카카오 해안의 초콜릿색 노동자들에게는 집단 희생과 피의 상징물이라는 사실. 특히 아동노예 문제는 아프리카와 초콜릿 산업의 검은 커넥션을 지탱하는 초콜릿의 가장 어두운 이면이라고 해요.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알아야 보이는 세상, 이 책을 통해 라틴아메리카를 배운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