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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인간을 유혹하는가
제시 베링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한때는 자살은 나약한 사람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 자신이 정말 죽고 싶은 순간을 겪고 나니 함부로 판단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어요.
자살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죽음은 똑같은 슬픔과 고통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라는 제목이 너무나 강렬했어요.
저자는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요구하기 전에 자신의 암흑기의 자기혐오와 구제불능의 열패감에 대해 고백하고 있어요.
바로 그 부분에 마음이 끌렸어요. 다른 분야의 전문가였다면 자기 고백이 약점이 될 수 있겠지만 심리학자이므로 솔직함이 강점이 된 것 같아요.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결코 자살하려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 책은 순수하게 정신적 고통으로 촉발된 죽음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주로 주기적인 우울증과 싸우거나 갑자기 숨 막히는 처지에 빠진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 책은 일상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자살심리 탐구서라고 할 수 있어요. 자살을 다룬 대부분의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은 모든 자살의 방지를 목표로 두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왜 그럴까요.
자살이라는 행위를 막기 이전에 자살 충동 심리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아는 거예요.
자살을 규정하는 요건은 스스로 치명적인 위해를 가해 죽으려는 의지라고 해요. 자살로 의심될 때 망자의 명확한 의도가 드러나야만 자살로 확정될 수 있어요.
여기에서는 자살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자살이 인간만의 행위인가?'라는 질문이에요. 동물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동물의 자살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이에요. 자살은 인간만의 행위라는 결론은 더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져요. 자살이 인간 고유의 감정들로 촉발되는 인간 고유의 행위라면 그것은 정신적 진화의 불운한 부산물일까요.
저자는 대학원 시절, 우연히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쓴 <자기 도피로서의 자살>이라는 오래된 글을 접했고, 그의 자살 시도 분석을 읽으면서 자신의 경험을 놀랍도록 통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로이는 자살을 독특한 지옥 상태가 아닌, 나름의 편향된 인식과 완고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의식 상태로 보았고, 그 관점이 저자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요.
"내 편견임을 인정하지만, 평생 한순간이라도 자살에 유혹되지 않은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철이 들 만큼 괴로움을 겪어보지 않은 거니까." (143p)
저자 제시 베링의 의견에 동의해요. 진짜 아파 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예전에 지인에게 '만약 이런 고통을 겪는다면'이라는 말을 꺼냈더니 대뜸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마치 그럴 일은 없다는 듯 무시하는 대답에 충격받은 적이 있어요. 그동안 해맑은 성격이라고 여겼던 게 실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시였을 줄이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요.
저자가 로이를 만났을 때에도 그와 유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로이에게 자살 성향 유형에서 묘사한 깊은 어둠 속에 들어가봤는지 물었을 때 그는 자살하려고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자살이란 주제가 흥미로워서 연구했을 뿐이라고요. 이 예상치 못한 대답은 몇 년간 반려동물을 데려갔던 병원의 수의사가 점잖은 목소리로 자신은 사냥광이라고 무심히 말했던 때의 느낌이었다네요. 그러니 로이의 연구 분석은 오로지 그의 천재성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로이가 제시한 모델은 총 여섯 단계로 되어 있어요. 각 단계는 일련의 과정으로 봐야 해요. 개인은 어느 정도의 자살 성향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단계마다 점점 위험해진다고 볼 수 있어요.
1단계 역부족 ▶ 2단계 자신을 탓하기 ▶ 3단계 고도의 자기의식 ▶ 4단계 부정 정서 ▶ 5단계 인지의 붕괴 ▶ 6단계 탈억제
이 책은 자살에 관한 객관적인 통계와 과학적인 이론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자살 성향자가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면 메타인지, 즉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인지 능력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저자는 미디어에서 자살 소식을 접할 때마다 경계심을 갖고 여기서 살펴본 이론들을 동원해 사건을 분석할 수 있다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자살 이야기에 노출되어도 자살 충동을 예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것이 이 책을 쓴 주된 이유라고요. 마지막으로 이타적인 타인들의 영향력은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한다는 걸 알려주네요.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타인의 평가가 자신의 존재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타인의 의견과 판단에 자신의 감정이 휘둘릴 때, 이때는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돼요. 사회적인 괴로움을 알아주는 한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한 사람 덕분에 우리는 끔찍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