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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대디
제임스 굴드-본 지음, 정지현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댄싱 대디>라는 제목부터 뭔가 짐작했어요.
엄마도 아니고 아빠라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앗, 그만 알아버렸어요. 레몬 향 비누처럼 인생의 맛이 있다면 딱 그런 맛일 거라는 걸.
"대니 머룰리는 네 살 때 레몬 향 비누가 레몬 맛은커녕 보통 비누와 똑같은 맛이라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열두 살 때 섣불리 고양이를 구해 주려다가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아프지도, 볼썽사납지도 않게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열일곱 살이 되어서는 협동조합에서 만든 3리터짜리 커다란 병에 든 싸구려 사과주를 해크니 다운스 공원에서 여자친구와 나눠 마시고 어설프게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선을 넘어 버리면 졸지에 애 아빠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에는 살면서 가장 뼈아픈 교훈을 깨우쳐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얼음 조각 하나 때문에
별안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끼익! 하는 자동차 바퀴 소리에 대니는 잠에서 깼다." (10-11p)
자, 너무도 절묘하게 모든 상황을 알려주고 있네요.
지금 대니 머룰리의 인생이 보이시나요?
일찌감치 애 아빠가 된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되었고, 스물여덟 살에 자동차 사고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1년 전쯤 대니는 아내 리즈를 잃었어요. 그날 아내는 아들 윌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얼음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 이후로 아들 윌은 말을 잃어버렸어요. 말을 할 수 있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선택적 함구증에 걸렸어요. 학교에서 윌은 마크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요.
대니는 사고 이후로 매일 생각했어요. 그날 병가를 냈더라면, 아내가 차에 타기 전에 단 몇 초라도 더 붙잡고 있었더라면, 작업화를 또 현관에 벗어 놔 아내가 잔소리하느라 늦게 출발할 수 있었더라면 리즈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장인 로저는 장례식장에서 대놓고 대니를 원망했어요. 대니가 운전했으면 딸이 살아 있었을 거라고. 거기까지였다면 딸 잃은 아버지의 절규로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장인이 내뱉은 마지막 증오의 말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어요. 누구보다 리즈를 사랑했던 대니와 윌에게, 로저는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어요.
"있어야 할 엄마는 잃어버리고......" 로저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마에 붕대를 감고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등대불처럼 빛나는 윌을 가리키며 말했다.
"쓸모도 없는 제 아빠와 둘이 남겨졌구나." (47p)
대니의 불행은 리즈가 떠난 이후 점점 커져가고 있어요. 눈덩이처럼.
집 주인 레그는 갑자기 월세를 올렸고, 일하던 공사장에서는 해고를 당했어요. 에휴, 레그라는 놈은 그냥 나쁜 놈이에요. 영국 런던에도 이상하게 갑질하는 인간 쓰레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네요. 최악의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레그 효과였어요. 아들 윌 앞에서 레그에게 굴욕을 당해야 하는 대니...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실의에 빠진 대니는 공원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어요. 대니의 눈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거리 공연으로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는 사실만 보였어요. 그래서 거리의 춤추는 판다가 되기로 했어요. 의상실에서 더러운 판다 의상을 사 입고 공원에 나선 대니.
헉, 쉽게만 보였던 거리 공연이 대니에게는 새로운 시련의 시작이었으니...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어요. 첩첩산중. 읽는 내내 안타깝고 속상했어요. 그저 잘 되길 응원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죠.
세상에 불행 배틀이 있다면 단연 우세했을 대니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진심으로 대니와 윌이 행복해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다고 한들 언젠가 해뜰 날이 올 거라고요. 부디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힘을 내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