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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건 나야
조야 피르자드 지음, 김현수 옮김 / 로만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불을 끄는 건 나야>는 조야 피르자드의 소설이에요.
조야 피르자드는 1952년생으로 이란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 소설가예요.
특별히 저자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내는 이유는 그녀가 주로 여성을 주제로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집필하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 클래리스의 삶 속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어요.
서른여덟 살의 클래리스는 평범한 주부예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남편 아르투시와 열다섯 살의 아들 아르멘, 쌍둥이 딸 아르미네와 아르시네를 위해 헌신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에요. 클래리스의 집은 만남의 광장처럼 늘 사람들로 시끌벅적해요. 클래리스의 엄마와 여동생 앨리스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조차 마음대로 들어와 있어요. 친구 니나와는 가족과 다름 없는 사이지만 말이 너무 많고 일을 벌려만 놓는 스타일이라 뒷감당은 늘 클래리스 차지예요. 왜냐하면 클래리스는 누가 뭐래도 다 이해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묵묵히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애쓰는 역할이니까요.
어느 날, 길 건너편 G-4호 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어요. 쌍둥이보다 세 살 많은 여자아이 에밀리와 에밀리의 아빠 에밀, 에밀리의 할머니 엘미라 시모니안 부인.
쌍둥이들은 학교 버스에서 에밀리를 만났고 집으로 데려왔어요. 잠시 후 현관 벨이 울렸고, 에밀리의 할머니가 들이닥쳤어요. "얼른 안 가?" 고함을 치자 아이는 도망치는 토끼처럼 후다닥 뛰어나갔어요. 클래리스는 현관문을 닫고 유리문에 달린 레이스 커튼 사이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어요. 에밀리의 할머니는 손을 번쩍 들더니 손녀딸의 뒷목을 세게 내리쳤어요. 너무도 충격적인 첫 만남 이후, 클래리스는 에밀리의 할머니를 피하고 싶었어요. 엘미라 시모니안 부인의 성격은 그 누구라도 감당하기 힘든, 막무가내 여왕 스타일이었거든요. 반면 에밀리의 아빠 에밀은 반전의 인물이었어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거의 말이 없고 경직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클래리스의 집에 혼자 놀러 왔을 때는 매우 편안하고 사교적인 사람이었어요. 아르투시와는 종종 체스를 뒀고, 클래리스와는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눴어요. 에밀은 흙과 식물을 좋아한다면서 클래리스의 마당에 있는 화분갈이도 도와줬어요. 에밀리는 쌍둥이들이 좋아해서 자주 놀러왔는데, 사춘기 소년 아르멘은 사랑에 빠졌어요.
북적북적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클래리스는 난생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어요. 바로 에밀 시모니안.
친구 니나는 조카 비올레트가 이혼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새로운 남자 에밀을 소개시켜주려고 했어요. 에밀은 아내와 사별한 싱글남이니까. 니나는 제멋대로 소개의 장소를 클래리스의 집으로 정하고 파티를 열자고 했어요. 이런, 에밀이 그토록 매력적인 남자였나?
클래리스의 동생 앨리스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인데 한마디로 자뻑 공주 스타일이라 쭉 솔로였는데 갑자기 결혼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하필이면 에밀에게 꽂혀서...
평범했던 클래리스의 일상은 에밀리 가족을 통해 바뀌기 시작했어요.
에밀 시모니안, 그는 클래리스에게 친구처럼 다가와 다정하게 그녀의 말을 들어줬어요. 친구처럼, 단지 그뿐인데 클래리스는 비올레타와 앨리스가 에밀에게 보내는 관심 때문에 신경이 쓰였고,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오지랖이 넓어서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착한 클래리스는 그동안 남들에게 희생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깨닫게 되었어요. 나는 뭐지, 내 삶은 누구를 위한 거지... 텅 빈 느낌... 그제서야 클래리스는 서른여덟이란 나이를 먹을 때까지 자신을 위해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늘 남들을 위해 참으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을 끄는 건 나야>는 일상의 언어를 통해 가족과 나, 주변 사람들과 나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요.
결국 우리들의 삶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약간의 갈등과 혼란은 있었지만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가는 법.
무엇보다도 신기한 건 아내이자 엄마인 동시에 딸로 살아가는 여자의 심리가 국적 불문하고 통했다는 거예요. 공감 백퍼센트의 이야기였어요.
마지막으로 클래리스 덕분에 이란의 평범한 가족이 살아가는 일상과 정치, 문화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신선하고 좋았어요.
"엄마, 여기 마지막 부분은 엄마가 읽어 주시면 안 돼요?"
"엄마가 읽어 준다고 약속했잖아요!" 아르시네가 내 기억을 상기시켰다.
소피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제 약속했어요. 아줌마는 약속 잘 지키는 사람!" 아이들은 깔깔 웃었고 우린 다 같이 그네에 끼어 앉았다.
내가 《소공녀》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자 소피가 말했다. "아이가 불쌍해요."
"왜 불쌍해?" 아르시네가 물었다.
"마지막엔 결국 다 잘됐잖아." 아르미네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처음에 너무 고생했으니까." 소피가 말했다. (48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