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아이 - 20세기 중반에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 ink books 3
올가 그로모바 지음, 강완구 옮김 / 써네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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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아이>는 20세기 중반에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예요.

소녀의 이름은 스텔라 나타노브나 누돌스카야예요. 스텔라를 줄여서 엘랴라고 불렀대요.

엘랴는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요. 엘랴가 네 살 때, 아빠는 집으로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체포되었어요. 어떻게 아빠를 체포해 갔고 어떻게 집안을 수색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엘랴는 깊이 잠들어 있었어요. 나중에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1937년 여름, 엘랴는 엄마와 함께 유배를 떠났어요. 엄마가 들고 있는 서류에는 '아래에 적혀 있는 사람', 즉 엄마와 엘랴를 3일 안에 모스크바에서 키르기즈 공화국의 칼리닌스크 지구 토크마크-카가노비치시로 유배를 보낸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겨우 여섯 살 엘랴에게 벌어진 비극이에요. 하지만 엘랴는 그때의 일을 완전히 새로운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책을 읽고나서 다시 책표지를 봤어요.

붉은 말과 소녀, 그 뒤에 줄이... 앗, 철조망이었네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년)가 떠올랐어요.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암울한 순간들을 놀이로 만드는 마법을 보여줬어요. 참담한 비극 속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네요. 가슴 뭉클했던 그 장면을 이 책속에서도 보게 될 줄이야.


<설탕 아이>의 주인공 엘랴는 엄마와 함께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했지만 거의 기억나질 않아요. 그 뒤에 간 곳이 설탕 공장을 위한 사탕무를 재배하는 농장이었는데, 그때 붉은 색 말을 탄 키르기즈인이 엘랴에게 "아크 발라, 칸트 발라 (백인 아이, 설탕 아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키르기즈인들은 엘랴를 칸트 발라, 즉 설탕 아이라고 불렀고, 그들과 함께 도와가며 살았어요. 똑똑했던 엄마는 사람들에게 밤마다 책을 읽어주었어요. 엄마가 러시아어로 읽으면 트랙터 운전사인 크라프첸코가 키르기즈어로 번역했고, 모두가 함께 들으며 (번역에 걸리는 시간 만큼 차이를 두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숨을 죽이기도 하고 깔깔거리고 웃기도 했어요. 깔깔거릴 때는 두 번 웃었어요. 처음에는 키르기즈인들이 러시아인들과 함께, 한번 웃음이 지나고 난 다음 크라브첸코가 번역해주면 러시아인들이 키르기즈인들과 함께 웃었어요. 엄마를 닮아 똑똑했던 엘랴는 키르기즈인들의 민족 서사시《마나스》를 모두 암송할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 키르기즈인들을 위해 마나스를 읊어주었어요.

엄마에게는 늘 일이 있었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엘랴는 이야기해요. 실제 나쁜 사람들이 적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엘랴의 기억에는 나쁜 사람들이 없었다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건 누가봐도 혹독한 환경이잖아... 네, 물론 엘랴가 절망에 빠져 울부짖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곁에는 엄마가 있었어요.

엄마는 놀라운 사람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침착했고 친절했어요. 엘랴는 엄마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엄마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엘랴는 아주 나중에 책속에서 "불굴의 의지", "확고한 결심", "강철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또한 엄마는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많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잘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씌우지 말라고 했어요. 


"... 아무것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돼. 어떠한 단어도 구호도 크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누구를 비판하거나 칭찬해서도 안돼.

머리로만 생각하고 심장으로만 들어야 해. 마음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심장으로 듣는다는 것이 무슨 말이야? 심장은 뛰기만 하잖아."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그렇게 말해. 네가 언젠가 쿠프라노프 씨네가 왜 유배되었냐고 물은 적 있지?

그때 내가 혁명 후에 재산이 많았던 모든 부농들이 인민의 적 또는 착취자라고 한다고 설명해 주었잖아. 

그리고 수천 명의 부농들의 재산을 몰수했다고. 너는 그때 내 이야기를 듣고 물어봤어.

'부농들은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우리도 도와줬잖아요.

일을 잘하고 정직한데 왜 그들이 적이야?'라고 말이야. 그게 바로 심장으로 듣는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너는 귀로 인민의 적들에 대해서 듣지만 네 심장은 믿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잖아."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귀로 듣는 것을 믿는 거야?  그 사람들에게는 심장이 없는 거야?"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귀로 듣는 것만을 믿지. 그 사람들은 뭘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거나......

아니면 자기 스스로 생각하려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야. 누가 이야기해주는 것을 믿고,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훨씬 쉽거든.

하지만 너는 점점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있잖아, 안 그래?"   (194-195p)


졸업반 10학년이 된 엘랴는 독일어를 러시아어만큼 자유롭게 말할 줄 아는데도 독일어 수행평가 시험에서 3점을 받았어요. 지난해까지 전과목 5점을 받았던 엘랴에게 선생님은 왜 3점을 주신 걸까요. 그리고 얼마전에 있었던 러시아어 작문 시험에서도 3점을 받았어요. 졸업 학년에 두 과목에서 4점을 받아도 메달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러시아어라면 불가능해요. 결국 엘랴는 금메달은 고사하고 은메달도 받기 힘들다게 되었어요. 사실 엘랴는 시험점수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알고 있어요. 그건 공평하지 않은 일이에요. 화가 나고 수치스럽지만 그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도 따지지 않을 거라는 걸 엘랴는 알고 있어요. 

<설탕 아이>를 다 읽고나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예요. 귀로 듣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분열과 갈등, 더 나아가 전쟁을 겪어 왔어요. 그러나 엘랴 엄마의 말처럼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심장으로 듣는, 용감하고 착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수많은 시련을 극복해낼 수 있었어요. 그 믿음과 희망이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었다고, 설탕 아이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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